사회간접자본시설(SOC)을 민간자본으로 확충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어찌보면 "예정된 수순"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애시당초부터 먹을 게 없는 잔치판이었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불투명한 사업이 대부분인 데다 장사가 될 만한 일엔 수익률 등을
까다롭게 제한해 매력을 없애 버린 탓이다.

물론 "외환위기"라는 외적 변수가 돌출한 것이 핑계거리가 되긴 한다.

애써 사업시행자를 결정했으나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바람에
사업 자체가 표류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지나친 부대사업 제한으로 외자유치나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가로막은 책임은 당국에 돌릴 수 밖에 없다.

결국 민자유치 사업이 통째로 좌초된 것은 잘못된 사업선정에 제도 부실과
정부의 의지부족이 겹친 "부실공사"라 할 수 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수익성이다.

기본적으로 민자유치는 정부가 세금으로 해야할 일을 민간이 대신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익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민자유치 대상 사업의 대부분은 재정투자 우선순위가 낮았던 사업
이다.

"될만한" 사업은 정부나 투자기관이 세금으로 추진하고 그렇지 않은 사업은
민간보고 투자하라니 사업이 될 리가 없다.

민자유치 가능성을 먼저 검토하고 불가능한 경우에만 재정투자를 하는
영국의 PFI(Private Financing Initiative)와는 정반대인 꼴이다.

민자유치 사업이 재정부담 회피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
이다.

특혜시비를 의식한 지나친 규제도 민자유치를 부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SOC 투자는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하고 자본회임 기간이 길다.

사업특성상 대기업외에는 참여할 수 있는 기업이 없는게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대기업에 대한 특혜시비를 우려해 옥상옥의 규제를 하고 있다.

투자수익률을 13%선으로 제한하고 지분의 30% 이상을 투자할 경우 계열사로
편입해 각종 규제를 받도록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SOC 사업에 13%선의 수익률을 보고 투자하라는 것은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 정도의 수익률을 올리려면 굳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민자유치 사업에
투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참여한 사업이고 도로나 항만 같은 공공시설이어서 지나치게 높은
"이익"은 곤란하다는게 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같이 낮은 수익률은 한국의 민자유치 사업을 국제적으로 "흥미
없는" 사업으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건설단계에서의 재정지원 비율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는 것도 문제다.

어차피 민자유치 사업은 일정한 투자수익률을 보장해 주게 돼 있다.

건설단계에서 재정지원이 적을 경우 운영단계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건설단계에서 적정수준의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이 같은 지원으로
사업을 조기에 추진하는데 유리하다.

외국의 경우 용지보상비는 물론 공사비의 50-80%를 재정지원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자유치 사업이 일감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건설회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도 사업추진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민자유치 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소요돼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관건
이다.

건설 자체보다 금융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흔히 민자유치 사업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꽃이라 불린다.

자금의 규모가 크고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 고도의 금융기법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민자유치 사업에서 금융기관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도버해협에 터널을 뚫어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한 유로터널 사업이 금융기관
주도로 추진된 대표적 사례다.

이에비해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민자유치 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선다는 생각
조차 못하고 있다.

금융기법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형편을 감안할 때 부족한 SOC를 확충하는 길은 역시 민자유치가 유일한
돌파구다.

IMF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적자와 복지지출 수요증가로 당분간
SOC 투자를 확대할 엄두를 낼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자유치 대상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될만한 사업"을 골라
"될만한 조건"으로 허가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민자유치 사업을 민간보고 하라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민자유치를 재정부담 회피수단이 아닌 보완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과감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최경환 논설위원겸 전문위원 kghwchoi@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