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얼마전에 한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나를 친언니처럼 따르던 후배였다.

연락한번 없는 내가 야속하다는 듯 그애가 물었다.

"언니는 나보다 골프가 더 좋은거지. 신문에 골프글은 매주 올리면서 왜
나한테는 연락한번 안해? 골프가 정말 그렇게 좋은거야, 아니면 골퍼들이
읽는 글이라고 그냥 그런척하고 쓰는거야"

후배는 내가 "좋아하는 척"하고 쓴 글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안지 십년도 더 된 자기를 나몰라라하게 만든 골프가 얄미워서.

하지만 그 후배에게 내가 골프에 대한 애정도를 체크해서 보여주겠다.

그건 사랑에 빠진 사람과의 체크법과 같다.

1) 앞에 없으면 눈에 선하다 -사랑에 빠지면 눈에만 선하지만 골프는
몸까지 근질거린다.

거울앞을 그냥 못지나쳐 빈스윙이라도 해봐야 하고 연필만 잡아도 저절로
그립이 쥐어진다.

필드라도 다녀온 날에는 천장 구비구비 파 잡은 홀이 그려지고 굿샷을 내던
그 임팩트 소리도 귓가를 맴돈다.

2) 함께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 데이트 처럼
골프도 그렇다.

첫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 18홀을 마칠때까지 너댓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고 집에 돌아가기가 못내 아쉽다.

3) 우울할 때 위로받고 싶은 상대로 떠오른다 -그렇다.

난 우울하면 드라이버를 휘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태에서 휘두르는 스윙은 대부분 미스샷으로 연결되지만 기쁜 순간이
아닌 우울한 순간에도 떠오를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건 그만큼 강력하다는
얘기다.

4) 수시로 질투심이 생긴다 -좋아하지 않으면 질투도 없는 법! 채 잡은지
얼마되지도 않은 사람이 내 샷을 압도할 때, 내 채가 다른 사람손에 들려 더
거리를 내고 있을 때 나는 질투심에 속이 쓰려온다.

5) 바쁘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바빠서 못 만난다는 말은 마음이
식었다는 말.

잠잘 시간조차 없어보이는 사람이지만 신기하게도 연인 만날 시간은 낸다.

내 골프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첩첩산중 쌓여있는 약속이라도 갑자기 밀고 들어온 골프앞에선
모두 뒤로 밀려난다.

내 증상은 이 정도다.

"후배야 이해해라. 솔직히 너보다는 골프가 좀 더 좋다. 그래도 우리는
선후배 사이에 그치지만 이게 부부사이이면 그 소외감은 오죽하겠니? 그러니
후배 너는 섭섭해도 참아라"

물론 참지 못할 경우 딱 한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골프를 시작하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