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벤처기업인 거성바이오의 왕성호(40) 사장.

그는 5년째 살던 인천 부평의 3억원짜리 집을 지난 5월 팔아치웠다.

빠듯한 회사 운영자금을 대기 위해서였다.

항암작용에 숙취제거 효과까지 있는 "목초액"이란 신물질을 작년 7월 개발해
놓고도 돈에 목말라 있긴 여전했다.

시중엔 벤처자금이 넘쳐 흐른다지만 그에겐 딴 나라 얘기였다.

목초액은 참나무 숯 연기에서 독성을 뺀 물질로 원자력연구소 등에서 그
효능을 검증받았다.

지난 4월엔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식품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선 별로 주목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창투사들로부턴 아예 냉대받기 일쑤였다.

그는 기술개발을 거의 마무리하고 몇몇 창투사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건 매출 등 눈에 보이는 실적이었다.

당연히 투자유치에 실패했다.

어떤 창투사는 1~2년안에 코스닥에 등록할 수 있는지만 따졌다.

"온통 먹고 빠지겠다는 식이더군요. 저는 지난 5년동안 전재산과 인생을
걸었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인터넷 주식공모도 생각해봤지만 포기했다.

"지금은 인터넷 사업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밉니다. 연구개발(R&D) 우수기업
으로 벤처지정을 받았지만 소용 없어요. 요즘은 개인투자자들도 "인터넷"이나
"창투사 투자기업"이란 보증딱지가 없으면 관심도 안 갖습니다"

지나친 규제도 그에겐 족쇄였다.

임상실험으로 효능은 확인됐지만 그 원인을 확실히 못밝혀 국내에선
식품으로도, 의약품으로도 인정을 못 받았다.

"식품의약청에선 임상실험 결과보다는 약리작용의 원인을 따지더군요.
원인을 못 밝히면 인정을 못 해준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효능을
광고할 수도 없고 거의 영업을 못합니다. 잘못했다간 허위과대광고로 철퇴를
맞지요"

눈을 외국으로 돌렸다.

미국 FDA에 식품확인 신청을 낸 것도 이 때문.

그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다.

목초액의 효능을 놀랍게 여긴 유럽기업들이 1천2백만달러(약 1백40억원)어치
를 사기로 한 것.

"정부가 벤처를 육성한다고 난리지만 저희같은 진짜 벤처기업들은 아직도
찬밥이에요"

수출 길이 뚫려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왕 사장은 이젠 창투사가 돈을
싸들고 와도 안 받겠단다.

최근 벤처열풍의 또다른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 차병석 산업2부 기자 chab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