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오후 5시 샘표식품 공장(서울 창동)에서는 "생생 버라이어티쇼"
가 열린다.

어어부 프로젝트, 닥터코어 911, 황신혜밴드, 크라잉 넛 등 별난 이름의
밴드가 이색무대인 간장공장에 오르는 이 행사의 주최자는 패션업체 쌈지다.

쌈지는 지난 10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쌈지(쌈박한 지랄)쇼"를 열었다.

기성세대들은 뜻도 전달 안되고 경박해보이기까지 한 이벤트지만 N세대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생생쇼의 경우 관객 2천명을 인터넷을 통해 추첨했는데 신청서가 폭주해
응모 시작 이틀만에 모집을 마감해야 했다.

이처럼 각종 이벤트를 통해 신세대들과 열렬한 교감을 나누고 있는 쌈지가
10대들에게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사실 "ssamzie"라는 로고가 쓰여진 지갑이나 핸드백 하나 정도는 집집마다
있을 만큼 20, 30대에게도 친근하고 평범한 이미지의 브랜드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쌈지제품은 겉으로는 범상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기발하고 특이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흔한 디자인의 가방이라도 자세히 뜯어보면 끈에 달린 액세서리가
남다르거나 지퍼가 색다르게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 중반 쌈지의 전신회사인 레더데코가 출발하면서 선보인 "거지백"도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디자인이었다.

그때까지 핸드백은 점잖고 딱딱하고 무거운 제품 일색이었다.

하지만 거지백은 말 그대로 오래써서 너덜거리는 거지 가방처럼 부드럽게
흐느적거렸으며 형태도 자유로웠다.

쌈지의 천호균 사장은 "미국의 60년대 팝아티스트 올덴버그의 "부드러운
조각"에서 유연한 가죽백의 힌트를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이 상품에 당혹감을 느꼈지만 곧 부드러움이 주는
편리함과 멋에 깊이 빠져 들었다.

거지백의 대성공으로 국내패션잡화 업계 정상에 오른 쌈지는 예술과
패션상품의 접목을 마케팅 전략의 기본 축으로 삼았다.

이불 서정화 같은 아티스트를 후원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상품 디자인에
적용하는 한편 이를 다시 마케팅에 활용했다.

또 가난하지만 발전 가능성이 높은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지원하고 미술가의
작품 한 끝에 쌈지 로고를 삽입해 자사 이미지를 높이는 식의 아트 마케팅을
전개해 오고 있다.

앞서 언급된 언더그라운드 밴드와 쌈지 고객들의 만남도 그 일환이다.

쌈지 상품이 지극히 평범해 보이면서도 남다른 것은 바로 예술가들의 향기가
은근히 배어있기 때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쌈지는 브랜드 이름에서도 특별함을 잃지 않는다.

주머니의 순 우리말인 "쌈지", 남성패션 액세서리 전문 브랜드임을 눈치챌
수 있게 하는 "놈", 1318세대의 문구류부터 패션소품까지를 판매중인 "딸기",
그리고 한국의 명품이 될 것을 선언하고 최근 론칭된 "니마(님아)" 등 업체
쌈지의 브랜드들은 재미있고도 뜻깊은 순 우리말 이름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 설현정 기자 sol@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