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앉은 남녀.

여자가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슬쩍 운을 띄운다.

아니, 노골적으로 말한다.

섹스하자고.

당황해 하는 남자.

여자는 웬 상자를 들고 온다.

헤드폰 비슷하게 생긴 헤드기어를 꺼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남자의 머리에
씌워 준다.

자신도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눈을 감고 몰입하는 여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남자도 여자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격렬한 운우.

남자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지만 자신과 여자는 여전히 멀찌감치 마주
보고 앉아 있을 뿐...

영화 "데몰리션맨"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서기 2017년.

여기 등장하는 사이버섹스는 완벽한 수준이다.

은빛 헤드기어를 착용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난다.

뇌에 전극을 꽂지도 않는다.

그런가하면 영화 "가상 현실"에는 컴퓨터안에 섹시하기 이를데 없는 가상의
여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소프트웨어)의 효용은 접속해 들어오는 사람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상현실속의 윤락녀 프로그램.

이 두영화 모두 궁극적인 사이버섹스를 그려냈다.

쾌락은 손끝에서 오는게 아니라 뉴런을 통해 자극을 전달받은 대뇌 피질
에서 느껴진다는 기초적인 의학상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당장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의 가상현실은 인간의 5감중에서 시각과 청각만을 대상으로 한다.

영상과 사운드.

컴퓨터의 입장에서 가장 표현하기 쉬운 감각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촉각까지 표현하는 가상현실 장비가 연구되고 있다.

옛날 도트프린터의 헤드를 빽빽하게 배열시킨 잠수복을 상상하면 된다.

이것은 가상현실 안에서 촉각이 발생하는 신체 부위를 미세한 핀으로
찌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누가 볼을 가볍게 만지면 볼 부위의 핀들이 살짝 건드려 주고, 턱을
맞았다면 주먹만한 넓이의 핀이 동시에 세차게 때려 주는 것이다.

아직은 이처럼 감각정보의 최말단, 즉 감각센서를 물리적으로 자극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사이버섹스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대뇌의 비밀을
밝히는 것 말고도 걸림돌이 또 있다.

바로 오르가슴 메커니즘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영화에서처럼 감각정보의 판단영역(대뇌)을 직접 제어해 사이버섹스를 하는
것은 한낱 꿈일 뿐이다.

그러나 그 누가 알랴, 현재 컴퓨터와 의학기술의 진보도 50년전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텐데.

< 준남성크리닉원장 jun@snec.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