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르 에르바소르''는 1890년대 프랑스의 세계적 자동차 회사였다.

이들은 고객이 제원을 정해 주면 이에맞게 부품을 주문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차를 생산했다.

연간 생산량은 6백~7백대.

수백개의 부품을 차례로 맞춰서 자동차 한대를 만들어 냈다.

수공업시대의 대표적 자동차 생산방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헨리 포드는 부품의 완전하고 일관된 호환성과 부품장착의 용이성을 통해
효율적인 조립생산을 추구했다.

1913년 포드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 최초로 작업자가
아닌 작업물인 자동차가 이동하는 조립식 라인을 만들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다.

작업자들은 한가지 작업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작업속도가 빨라지고 조립
비용은 절감됐다.

철저한 분업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한 것이다.

그 결과물이 최초의 대량생산방식 모델인 포드 T형 차였다.

이때부터 포드식 대량생산방식은 반세기 이상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왔으며 결국 북미와 유럽지역의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포드방식은 생산공장, 기술부문, 마케팅부문 등이 대량생산을 뒷받침
하도록 만들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포드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량생산 방식을 완성한 것은 GM이었다.

GM의 창업자 윌리엄 듀란트의 후임으로 취임한 알프레드 슬론은 산하 5개
자동차사업부와 부품제조사업부들을 각각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고 고위간부들
이 이를 하나씩 맡아 감독하는 체제를 갖췄다.

또 고객의 광범위한 요구를 수렴하기 위해 가격대별로 다섯가지 모델을
생산했다.

노조의 협조적 태도도 대량생산 방식에 일조했다.

즉 포드식 공장방식에 슬론식 마케팅 및 경영기법의 통합과 조합주의적
노동운동은 미국 자동차 산업을 전성기로 이끌면서 대량생산방식을 완성했다.

1950년 도요타는 새로운 자동차 생산을 시도한다.

대량생산체제가 일본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제조공정마다 필요한 때에
적절한 양의 부품을 공급하고 다품종 생산을 하는 것.

즉 린생산방식이다.

2차 대전후 서구 자동차회사들은 전용프레스 기계를 설치하고 몇년간 같은
부품만 찍어냈다.

그러나 도요타는 간단한 금형교환기술로 금형을 2~3개월, 2~3시간마다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프레스 제품을 한꺼번에 대량생산하는 것보다 소량으로 생산하는 경우
단위당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재고유지비용이 절감되고 소량이어서 프레스 성형에 실수가 있으면 즉각
눈에 띄어 별도의 수정공정이 필요없게 됐다.

작업자는 더욱 품질에 신경을 써 불량 제품의 낭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높은 참여의식도 뒷받침됐다.

일본의 종신고용, 조합적 노사관계도 이같은 린생산방식의 산물이자 필요
조건으로 탄생한 것이다.

조직은 팀리더를 중심으로 팀별로 작업을 하게 됐다.

여기서 품질분임조라는 것이 나온다.

집단제안과정을 통한 품질개선활동의 단위로 "가이젠"이라고 부르는 개선
과정을 수행한다.

부품조달체계도 마찬가지다.

50년대 도요타는 부품업체를 수직계열화 구조로 재편했다.

이를 통해 적기생산방식을 실현, 린생산방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현재 세계의 자동차메이커들은 대부분 이 방식을 도입하고 있거나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 김용준 기자 juny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