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정치의 도구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때로는 대통령 당락을 판가름짓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스벨트는 방송을 정치의 매개로 활용한 효시격이다.

대공황기 "뉴딜정책"으로 미국을 재건한 그의 공적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라디오를 통한 "노변담화"였다.

1933년 3월 12일 일요일.

루스벨트가 취임한 후 8일만인 이날밤 미국 전역의 라디오에서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친구 여러분..."이란 말로 시작된 연설에서 루스벨트는 미국 은행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과 대책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청취자들은 대통령이 마치 친구가 된 것같은 느낌을 갖게 됐다.

결국 노변담화는 미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공황극복의 주된 동력이 되었다는 게 후세의 평가다.

196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텔레비전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

당시 민주당 후보 경선자였던 케네디와 존슨은 대통령 선거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경선토론을 벌였다.

존슨이 상대방을 비방하는 등의 무례한 토론태도를 보인데 반해 케네디는
매끄러운 토론솜씨와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매너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후보로 나선 케네디는 공화당 후보인 닉슨과도 TV에서 맞붙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는 닉슨에게 TV토론을 피하라고 충고했다.

닉슨은 정면대결을 택했다.

카메라 앞에서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던 닉슨은 "TV형"케네디에 완패를
당했다.

이때 두 후보간의 TV토론을 "대토론( Great Debate )"이라고 부른다.

토론 이후 케네디는 유권자들의 높은 인기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사학자 해리 스틸 커마저는 "조지 워싱턴이 TV토론을 했더라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TV토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농촌에 국가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트랜지스터 라디오 생산및 보급을 유도했던 적이 있다.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