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강만수 무역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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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만수 부회장 약력 ]
<> 45년 경남 합천
<> 서울대 법학과
<> 뉴욕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 행정고시(8회)
<> 재무부 보험국 이재국 국제금융국 국장
<> 국회 재무위원회 전문위원
<>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 관세청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재정경제원 차관
<>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강만수(55) 무역협회 부회장이
시인으로 새로운 명함을 내밀었다.
40년 역사의 시조문학지 겨울호에 5수의 시조를 묶은 "그리움"이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것.
"(다섯째 수) 산다는 건 긴 세월에 흘러가는 그리움/그리움은 연어되어
모천으로 가는 길/가는길 구만리 장천 인생은 그리움이라"
"이제 그리움의 시인으로 다시 살겠습니다"
등단소감을 이렇게 밝힌 강 부회장은 "청운의 뜻을 품고 달리다가 낙마해
외롭고 서럽던 그 그리움을 딛고 삶을 응시하는 새로운 그리움위에 서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98년 3월 재경원 차관직을 물러나면서 이임사를 대신해 읊은 시를 떠올리
게 하는 대목이다.
재무부 이재국장과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등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강
부회장은 지난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재경원 차관을 끝으로 경제관료의 길을
접었다.
당시 그는 "공룡"으로 불리던 재경원이 출범 3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마감한 27년 4개월간의 공직여정을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 온
세월이라고 회고했다.
재경원 차관직을 물러나며 후배관료에게 "여러분이 잘하면 IMF
(국제통화기금)는 97년 크리스마스에 찾아 온 산타클로스가 될 것"이라며
후배관료의 분발을 당부했다.
그가 지천명의 나이에 시심의 불을 당긴 계기는 지난 6월 후배의 강권에
못이겨 시조문학지에 쓴 명사기고.
그는 이 글에서 "시조시인들끼리 담을 쳐놓고 즐기는 시조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시조가 돼야한다"며 세 수의 자작시를 선보였다.
책을 읽은 시조문학 회원들이 "자작 시조 자체가 우수한 시"라며 "신인상에
응모시키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등단 배경은 이렇지만 그는 경남고 2학년때 존 스타인벡과 같은 소설가가
되겠다며 1년동안 학업을 중단했을 정도로 문학인을 선망했다.
"고교때 가정교사를 했는데 부촌의 피아노 소리와 넝쿨장미가 "분노의 포도"
에서 주인공이 철조망 너머 바라보던 포도를 연상케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때문에 영어와 수학책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1년동안 작품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부친의 기대대로 서울대법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향수를 접을 수 없어 시간나는대로 틈틈이 펜을 잡았다.
대학 4학년 때는 "어떤 해후"라는 콩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원고청탁이 줄을 잇고 있다.
고향인 경남 합천의 지역신문으로부터 내년도 1월1일자에 실을 권두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난감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시인으로만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단군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의 한 가운데 있었던 인물중
하나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환란일기"를 출간했다.
강 부회장도 역사의 증언이 될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기록을 꼼꼼히 보관하는 스타일이다.
사무실에는 1년보관, 영구보관용 서류함이 따로 있다.
고교때부터 써 온 일기와 공무원 시절의 업무일지도 고스란히 갖고 있다.
"IMF가 축복인지 저주인지, 불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 불을 끄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
< 이심기 기자 sg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
<> 45년 경남 합천
<> 서울대 법학과
<> 뉴욕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 행정고시(8회)
<> 재무부 보험국 이재국 국제금융국 국장
<> 국회 재무위원회 전문위원
<>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 관세청장
<> 통상산업부 차관
<> 재정경제원 차관
<>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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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강만수(55) 무역협회 부회장이
시인으로 새로운 명함을 내밀었다.
40년 역사의 시조문학지 겨울호에 5수의 시조를 묶은 "그리움"이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것.
"(다섯째 수) 산다는 건 긴 세월에 흘러가는 그리움/그리움은 연어되어
모천으로 가는 길/가는길 구만리 장천 인생은 그리움이라"
"이제 그리움의 시인으로 다시 살겠습니다"
등단소감을 이렇게 밝힌 강 부회장은 "청운의 뜻을 품고 달리다가 낙마해
외롭고 서럽던 그 그리움을 딛고 삶을 응시하는 새로운 그리움위에 서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98년 3월 재경원 차관직을 물러나면서 이임사를 대신해 읊은 시를 떠올리
게 하는 대목이다.
재무부 이재국장과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등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강
부회장은 지난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재경원 차관을 끝으로 경제관료의 길을
접었다.
당시 그는 "공룡"으로 불리던 재경원이 출범 3년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마감한 27년 4개월간의 공직여정을 거대한 파도에 떠밀려 온
세월이라고 회고했다.
재경원 차관직을 물러나며 후배관료에게 "여러분이 잘하면 IMF
(국제통화기금)는 97년 크리스마스에 찾아 온 산타클로스가 될 것"이라며
후배관료의 분발을 당부했다.
그가 지천명의 나이에 시심의 불을 당긴 계기는 지난 6월 후배의 강권에
못이겨 시조문학지에 쓴 명사기고.
그는 이 글에서 "시조시인들끼리 담을 쳐놓고 즐기는 시조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시조가 돼야한다"며 세 수의 자작시를 선보였다.
책을 읽은 시조문학 회원들이 "자작 시조 자체가 우수한 시"라며 "신인상에
응모시키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등단 배경은 이렇지만 그는 경남고 2학년때 존 스타인벡과 같은 소설가가
되겠다며 1년동안 학업을 중단했을 정도로 문학인을 선망했다.
"고교때 가정교사를 했는데 부촌의 피아노 소리와 넝쿨장미가 "분노의 포도"
에서 주인공이 철조망 너머 바라보던 포도를 연상케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때문에 영어와 수학책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1년동안 작품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부친의 기대대로 서울대법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향수를 접을 수 없어 시간나는대로 틈틈이 펜을 잡았다.
대학 4학년 때는 "어떤 해후"라는 콩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원고청탁이 줄을 잇고 있다.
고향인 경남 합천의 지역신문으로부터 내년도 1월1일자에 실을 권두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난감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시인으로만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단군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의 한 가운데 있었던 인물중
하나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환란일기"를 출간했다.
강 부회장도 역사의 증언이 될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기록을 꼼꼼히 보관하는 스타일이다.
사무실에는 1년보관, 영구보관용 서류함이 따로 있다.
고교때부터 써 온 일기와 공무원 시절의 업무일지도 고스란히 갖고 있다.
"IMF가 축복인지 저주인지, 불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 불을 끄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
< 이심기 기자 sg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