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차단을 내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제안한 KDI 경제전망에 대해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경제가 막 회복단계에 들어섰는데 선제적인 인플레 억제를 거론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여전히 기업 및 금융부문의 부실위험을 안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당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즉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미리 걱정하기보다 시스템리스크 관리에 정책역량
을 모아야 할 때라는 반론이다.

또 내년 총선을 경제운용의 주요 변수로 보고 경제정책의 일관성 확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경기회복의 과실을 요구하는 사회 각 계층의 갈등이 표면화돼 정책기조가
흔들릴 경우 회복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사관계 악화를 내년 한국경제의 복병으로 지목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노사갈등이 증폭될 경우 경제의 "파이"가 줄어 모든 경제주체가 손실을
짊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상무는 "올 4.4분기 GDP 성장이 13%에 이르고 있지만
공장가동률은 여전히 80%에 못미치고 있다"며 "내년 7% 이상 성장하더라도
수요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상장기업들의 현금흐름 상태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며 "무리한
긴축선회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을 재현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30대 기업의 상당수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상태고 대우문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선제적 인플레 억제책이 금융경색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업정책 측면에서 정 상무는 "엔화가치가 강세를 띠는 등 대외경제여건은
한국에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다"며 "산업의 중심이 대규모 장치산업에서
IT(정보통신) 산업으로 순조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고 덧붙였다.

LG경제연구원 김주형 상무도 인플레에 대한 지나친 우려가 성장탄력을
앗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수요측 인플레 압력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긴축정책으로 선회하더라도 늦지
않다는 견해다.

김 상무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7.4%로 예상한다"며 "이 정도 성장에 3%
정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거시경제정책운용의 목표가 경직되는 것을 경계한다"며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정책을 운용하는 묘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플레 문제에 집착하기 보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지원
하고 확실한 시장규율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보인프라를 확충하고 고용보험 등 사회복지시스템을 재정비하는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부문에 편중된 경제운용의 초점을 실물 부문으로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우경제연구소 장용 연구위원은 "경기회복이 아직은 경제전반으로 확산
되지 않았다"며 "부품.소재 등 중소산업 육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재정적자 누적과 수출단가 하락 등이 내년 경제성장을
제약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의 우선순위를 산업경쟁력을 높이는데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고도성장을 이룬데다 재고 효과도 소진됐기 때문에 내년 한국
경제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박민하 기자 hahah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