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말 개봉됐던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은 여러가지 화제를
뿌렸다.

공포물의 틀을 빌어 교육현실을 아프게 꼬집은 이 영화는 일거에 62만명
(서울기준)의 관객을 동원했다.

"편지" "약속"에 이어 지난해 한국영화 3위의 흥행성적을 거두었고 전체
순위로는 7위에 올랐다.

"라이언일병 구하기" "007네버다이" "고질라" 등 할리우드 대작들의 흥행
기록마저 따돌렸다.

6억원 남짓한 돈을 들여 만든 영화치고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사회적 논쟁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영화에 비춰진 교실과 교단의 모습은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의
교육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24일 개봉되는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그 여고괴담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고 등장인물과 내용이 이어지는 속편은 아니다.

동일한 공간적 배경(여고)과 이야기 형식(괴담)만을 빌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갈등의 주체와 내용 역시 많이 달라졌다.

"여고괴담"이 학생과 교사 사이의 갈등을 축으로 비뚤어진 교육현실을
성토했다면 "두번째 이야기"는 학생과 학생 사이로 카메라의 시선을
끌어내려 여고생들의 비정상적 사랑(동성애)의 비극적 결말을 그렸다.

크게 보면 학교로 상징되는 각종 사회적 금기에 억눌린 10대들의 소리없는
항거를 뭉뚱그려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우연히 발견된 일기장을 매개로 이야기를 엮어 간다.

어느날 늦은 아침.

헐레벌떡 담을 넘어 등교한 민아(김민선)는 수돗가에서 자주빛 일기장을
발견한다.

무심코 일기장을 들춘 민아는 차츰 일기장 속의 세계로 빠져든다.

민아는 이 일기장이 효신(박예진)과 시은(이영진)의 교환일기장임을 안다.

민아는 일기를 읽으려고 꾀병을 부리고 양호실을 찾는다.

민아는 여기서 효신과 시은이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다.

며칠후 신체검사로 떠들썩하던 교실은 효신이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건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학교안은 근거없는 소문으로 웅성거리고 민아는 일기장에 적힌 내용을 따라
효신의 자취를 쫓는다.

민아와 시은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으며 그 보이지 않는 존재는
아직 학교를 떠나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는 효신의 영혼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는 일기장속 과거와 현실의 교정을 복잡하게 교차시키며 동성 친구에
집착했던 효신의 죽음과 한의 실체에 접근한다.

분위기는 여고괴담 보다 훨씬 맑고 환해졌다.

장난끼 넘치는 여고생들의 일상에서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맛깔스럽게
배치했다.

들고찍기로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교실안팍의 정적과 소란스러움을
적절히 대비시켜 공포감을 끌어올리는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김민선 박예진 이영진 등 주연을 맡은 신인들의 연기가 극중에 잘 녹아
들었다.

같은 반 단짝 친구로 나온 김민희 공효진도 순발력있는 연기로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열일곱" "창백한 푸른 점"등 단편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한국영화아카데미
13기 동기생인 김태용(30)과 민규동(29)이 공동연출했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