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삼성 등 재벌 금융계열사의 전문경영인들이 위법.부당행위로 일제히
징계를 받았다.

4대 그룹이 예외없이 계열사간 부당지원을 일삼았다.

고객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을 사금고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기 충분하다.

금융시장에서 보면 이들은 금융질서 교란자이다.

금융기관 종사자로서 선관의무를 저버렸다.

이들은 규정을 어겨가며 고객돈으로 계열사의 이익을 늘려주는 데 애썼다.

투신운용사가 고객돈(신탁재산)으로 계열 증권사가 보유한 부도채권을
장부가로 사준 사례까지 있다.

펀드수익률이 떨어져 고객들은 손해보지만 계열증권사에겐 이익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는 사실상 배임행위다.

재벌 오너들은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사회에 물의를 빚었으니 그만두라고 할까?

오히려 반대로 승승장구한다.

이들은 공신들이다.

피해를 감수해가며 그룹의 이익 극대화에 애썼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인사(23일)에선 이번 문책대상자가 다른 계열사 대표이사로
영전하거나 승진했다.

삼성의 금융계열사 대표들은 모두 주의적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았다.

이른바 "별"을 단 사람들이다.

현대의 금융계열사 대표들도 거의 별을 달았다.

조폭의 세계에선 두목의 범죄를 부하가 대신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를 의리라고 부른다.

감옥에 갔다온 부하는 충성심을 인정받아 고속으로 큰다.

재벌 오너와 금융계열사 전문경영인들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징계받은 전문경영인들만 비난하기도 곤란한 측면도 있다.

그동안 금융관행이 그랬기 때문이다.

느슨했던 감독체계를 감안할때 금감원이 이제와서 강력제재를 떠들기도 남
부끄럽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사석에서 금융기관의 과거 부실, 위법행위를 제재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털어놓았다.

과거 감독시스템 미비상태에서 벌어진 행태를 모두 징계하면 살아남을
임원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아직도 은행 보험외엔 문책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아도 별다른 인사상
불이익이 없다.

이론적으론 모든 금융계열사에서 돌아가며 임원이 될 수 있다.

금감원 징계가 솜방망인 이유가 여기있다.

미국에선 한번 찍히면 아예 금융시장에 발을 못붙인다.

정부가 사금고화를 막을 의지가 있다면 이 기회에 영구추방제를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나타나면 용납치 않겠다는 엄포가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