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신 < 서울중앙병원 정형외과 의사 >

"의.약 분업"은 우리 의료계가 나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의.약계의 소위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국민들만 골탕을 먹게 돼 버렸다.

원리 원칙을 지켜야 할 제도가 의.약계의 이해득실에 따라 조정을 거쳐 합의
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의약분업을 관철해야 한다는 정부의 조급함과 또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민단체들 압력에 의해 국민 편의는
구석으로 밀려 나고 말았다.

이제 의약분업은 마치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킨 열차처럼 내년 7월 시행을
향해 무섭게 질주,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섣부른 속단일 지 모르나 필자는 현재 확정된 의약 분업제도가 원래
시안대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국민은 물론 의료계 및 약업계가 오래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필경 갖은 편법이 난무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의약분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졸속 의약분업체제를 도출해 낸 정부 및 관련단체들은 반성해야 한다.

먼저 의료계나 약업계가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겉으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렇게 죽자 사자 양보를 못한
것 자체가 국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정부 정책은 지속적이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여론에 끌려가서는 안된다.

갑자기 정책을 바꾸어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무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국민을 위해 길을 만들테니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집을 비우라는
식이다.

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의료분야의 퇴보를 가져 오리라는 점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민 단체들도 우리 의료계의 현실을 파악하여 국민에게 최소한의 도움이
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상만 좇아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 자체의 확정에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만약 시행착오를 일으켜 큰 혼란이 초래될 때 이와 관련한 어느 단체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