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태환 회장 약력 ]

<> 55년생
<> 광운대 전자공학과졸
<> 한국통신 등 근무
<> 미국서 리시더컴퓨터(84년)사 등 설립
<> 한국서 오피콤(94년), 인포디아(97년) 설립
<> 미국에서 텔레킹(99년)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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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벤처기업인이 국내로 들어와 벤처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 언론에 대서특필되곤 한다.

드물게는 숨은 알짜 벤처인도 있다.

오피콤의 오태환(44) 회장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미국 LA지역의 3개 기업, 한국내 2개 벤처기업에서 연간 9천만달러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건실한 실업가.

그는 최근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시키면서 화제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4년 미국에서 회사를 차린 후 처음으로 대중에 가까이 간 셈이지요"

한국내 사업체들을 둘러보기 위해 최근 서울에 온 오 회장의 마음은 다소
들떠 있다.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 온 그였다.

"물건 수리하는 게 재미있어 고교때부터 라디오방에서 일했어요. 대학
(광운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가선 친척이 운영하는 가방공장에서 근무했구요.
이때 원자재수입 수출 관세환급 등 무역업무를 익혔지요"

그는 문득 옛날을 떠올렸다.

주간 학과였음에도 학교측을 설득, 수업은 야간에 듣고 낮엔 일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한국통신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영업을 익히기 위해 영어회화
카세트테이프 세일즈맨을 했다.

한국기계연구소에서 기술자로 일하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자 큰 물에서 놀겠다며 8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엔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밟았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공항 청소일,
컴퓨터 수리업무, 전자제품 판매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가게 하나 갖는 게 꿈이었지요"

친구 누나의 도움으로 2년여만에 IBM컴퓨터 전문 스토어를 냈다.

이때 텔렉스 컴퓨터 타자기 등을 연계.적용할 수 있는 첨단 통신프로그램을
개발해 당시 LA지역 텔렉스시장을 1백% 장악하던 웨스턴유니온사에 공급,
급성장세를 타게 됐다.

90년에는 반도체 판매회사인 아메릭스일렉트로닉스사를 LA에 설립했고 이의
성공에 힘입어 94년 한국에 광통신장비업체인 오피콤을 설립했다.

연평균 1백% 고성장을 지속해 온 오피콤의 올해 매출은 약 4백50억원.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문득 돈은 왜 버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세금을 많이 내자"를 사훈으로 삼고 더 열심히 일했어요. 그리고 엔젤(천사)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엔젤역에 충실하다.

유복자로서 어린시절 외가에서 자란 그는 다수의 소년소녀 가장들을
물심양면으로 돌보고 있다.

한국내 10여개 초기 벤처기업들에는 적지않은 천사 자금을 대줬다.

그의 지향점은 더 높다.

나스닥 상장이다.

"오피콤과 LA의 아메릭스사를 연계해 미국 시장을 파고 들면 나스닥 상장이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용모는 소박하지만 그의 포부는 야무지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