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문학과 종이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물음은 한 세기를 보내고 다음 세기를 맞는 올해 가장 많은 성찰의
대상이 됐다.

그중에서도 "현대문학" 2000년 1월호에 실린 기획특집 "새로운 천년과
문학의 미래"는 이색적이다.

편집진(주간 양숙진)이 국내외 문인 22명에게 세번째 밀레니엄의 문학위상에
관한 11가지 질문을 보내고 그 대답을 정리한 것이다.

내로라하는 시인.작가들의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는데다 서양과 동양, 소설과
시, 디지털과 활자매체의 다면성을 폭넓게 조명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설문에는 노벨상 단골 후보인 프랑스의 공쿠르상 수상작가 미셸 투르니에를
비롯 줄리언 반즈(영국), 알리샤 보린스키(미국), 미하일 부토프(러시아),
알리사 발저(독일), 타나시스 발티노스(그리스), 켈빈 소울(남아프리카
공화국), 왕멍(중국) 등 해외 문인 16명과 국내의 박경리 이제하 정현종
김영일(김지하) 이문열 김혜순씨가 참여했다.

이들이 전망하는 문학의 미래는 일단 긍정적이다.

미셸 투르니에(75)는 "세번째 밀레니엄이 도래하면 문학을 모든 인간이
다같이 향유할 수 있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때는 문학이 느릿느릿해지는
사치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새롭게 등장하는 시청각 기술들은 빠른 속도를 목표로 하는데 비해
책은 느릿느릿함을 겨냥하고 있다"면서 "성숙한 동물을 키우는데는 6개월이
걸리지만 성년의 인간을 키우는데 20년이 소요되는 것처럼 우리는 빠름과
느림의 대립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96년 내한했던 독일의 알리사 발저(38)는 "기술과 정보로 미쳐버린 세계에서
문학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된다"고 전망했다.

그리스 작가 타나시스 발티노스(67)도 "침묵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고 싶은
욕구는 한권의 책만이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샤오옌상 역시 "대중문학이 소비문화 성향 속에서 급격히 발전
하겠지만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문학작품들은 여전히 탄생할
것이며 이는 수량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독일의 오이겐 곰링어(74)처럼 "각 나라에서 문학은 구상적 시각적
시를 제외하고는 점점 더 불필요해질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는 대학에서도 문학분야는 급속도로 쇠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시각은 어떤가.

박경리(72)씨는 "표현과 형식은 변하지만 본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하(61)씨는 문학의 미래를 "거대한 갈증 뒤의 평화와 고요"로 요약했다.

노겸 김영일(58)씨는 "암묵적 고급예술로서의 소수 문학은 인간과 세계의
내면을 탐색하는 예민한 촉수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건져
올린 콘텐츠의 미학적 창조력은 새로운 상상력과 첨단미학 교육의 기초를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삼국유사"의 여러 향가와 설화의 현대화, 생태학과 네트워크, 우주
리듬과 인간 리듬의 일치, 민족문학 전통의 세계적 확대 심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열린 민족문학 안에 담긴 세계적 보편문학의 상상력"을 갖추라는
얘기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