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따뜻한 공장 안.

자동화된 컨베이어 벨트.

그 위에 놓여진 유리병들.

이 유리병들은 컨베이어를 따라 매일 조금씩 이동해 2백67일후에는 한 명의
사람을 탄생시킨다.

태아들은 이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동하는 동안 성별이 분류되고 예방접종
을 받으며 평생 불변의 계급이 지워지고 해당 계급에 맞는 조건반사 훈련을
받게 된다.

게다가 유리병 속에서 배양되는 수정란들은 원래의 것이 아니다.

즉 하나의 정자와 하나의 난자가 만나 이루어진 하나의 수정란이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수정란 한 개를 최대 96개로 분열시켜 클론을 만든다.

인간을 대량 복제해 생산하는 공장 이야기다.

이 애기는 1932년 영국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멋진 신세계"라는
과학소설 속에 그려진 런던중앙인공부화국을 묘사한 것이다.

이 소설은 흔히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지만 70여년
전에 상상한 것 치고는 대단히 미래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상상이 조금쯤 현실화된 것은 1978년.

그의 영향을 받아선지 과연 체외수정을 통해 사상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난 것은 영국에서였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수정 뿐 아니라 수정란의 분화, 즉 성장도 공장안에서
이루어지지만 현실적으로 아직까지는 인간의 자궁 밖에서 아기가 자랄 수는
없다.

20세기후반 들어 헉슬리의 나머지 상상도 조금씩 구체화돼 가고 있다.

그는 수정란 분열을 통한 클론 생산을 묘사했는데 최근들어 급속도로 발달
하고 있는 생명공학은 곧 그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정란 분열을 이용한 클론 생산은 인공적으로 일란성 쌍둥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현재 미국에서 원숭이까지 성공했다.

몇년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복제양 "돌리"는 성숙한 양의 체세포를
이용한 것으로 사실 기술적으로는 수정란 복제보다 어려운 방법이다.

그나저나 이 놀라운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작가는 출산과 양육을 정부가 관리하며 "통제하기 쉬운 인간"을 "생산"
한다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것이지만 이 개념에는 또다른 면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섹스와 번식을 완전히 분리시킨다는 것이다.

이미 인간이라는 종족은 발정기를 극복했다.

피임기술의 개발로 번식과 섹스를 어느 정도 분리하는 데도 성공했다.

사실 지금도 인간이 평생 행하는 수많은 섹스중에 본래의 목적인 수태를
위한 것은 단 한두번에 불과하다.

미래의 인류가 섹스와 번식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면 섹스는 과연 스포츠
로나 예술, 혹은 취미로 전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 천년의 섹스는 어떻게 발달할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 준남성크리닉원장 jun@snec.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