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은 20세기 끝자락 한국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999년 12월 31일 자정(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될 이 영화는 시대에
짓눌린 개인의 비극을 통해 79년부터 99년까지 이땅에서 일어난 끔찍하고
아픈 사실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들춰낸다.

영화는 40대남자 영호가 "돌아가겠다"고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시간을 거슬러가면, 애인으로부터 받은 박하사탕을 든채 들꽃을 보며
눈물짓던 여린 청년은 군대에 가자마자 영문도 모른채 광주사태 진압군이 돼
어이없게도 여학생을 죽인다.

엇나가기 시작한 그의 삶은 고문형사에서 여직원과 정사를 즐기는 뻔뻔스런
가구점사장을 거쳐 IMF파산자로 내리몰린다.

좌절로 점철된 20대와 물욕과 권태에 찌든 30대, 회한과 환멸 끝에 죽음을
택하는 40대의 광기어린 눈빛과 웃을 때 찌그러지는 입술은 일그러진 한국
현대사의 궤적을 그대로 대변한다.

때로 야비하고 흉물스럽고 거친 모습은 굴곡진 역사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채 우왕좌왕하며 살아온 우리의 자화상 자체다.

그로 하여금 꿈과 희망을 잃고 망가진채 세상을 등지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

영화는 미친시대였다고 말한다.

영호는 죽음을 택했으되 우리는 살아남았다.

새천년에도 지구의 자전은 1년에 5만분의 1초만큼 느려지고 사람들은 여전히
기웃거리고 주춤거리며 살아갈 것이다.

고통스런 과거를 돌아보고 반추하는 일은 힘들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나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마름모꼴 박하사탕은 소박하고 순수했던 시절과
잃어버린 추억의 상징이다.

이제 몇시간 뒤면 어지럽던 세기말도 돌이킬수 없는 역사 속에 묻힌다.

모든 과거는 지나간 미래거니와 눈물과 고통으로 얼룩진 세월이었다 해도
기쁘고 보람있던 순간이 왜 없었으랴.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은 없으되 자신을 지켜내는 건 각자의
몫이다.

20세기의 마지막날, 입안 가득 싸한 박하사탕을 깨물때의 상큼함으로
새날을 맞을 준비를 했으면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