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 잘사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함께 발전하지 않는
경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잘못된 틀을 바로 잡아야 새천년을 기약할 수
있어요"

학술원 최고령 회원인 최태영 박사가 새천년을 맞으면서 던지는 화두다.

최 박사에게 새 밀레니엄은 남다르다.

새해를 맞으면서 최 박사는 만1백세가 됐다.

그의 주민등록번호는 "000328-1042715".

1900년 3월28일 태어났음을 가리킨다.

그는 격동의 한국사를 헤치며 꼬박 한세기를 살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는 "기계(몸)"가 좀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신만은 또렷하다.

과거의 기억이 아직도 깨알같다.

66년 청주대 학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그칠 줄 모르는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진 지난해 이후 외부인사와 접촉을 삼가고 있다는
최옹을 지난해말 어렵게 만났다.

-후손들에게 새 천년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과거와 현재도 잘 모르면서 앞을 내다 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나라를 걱정한다면 먼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그것은 새천년의 초석을 제대로 놓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잿더미속에서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해
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이 더 많습니다.

바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민주화가 많이 진전되지 않았습니까.

"내가 얘기하는 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법이 있고 권력이 분립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1인에 의한 통치가 많았습니다.

견제기능이 없었어요.

이것은 올바른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특히 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평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여기에 관심을 쏟지 않았어요"

-요즘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나는 학자입니다.

정치는 잘 몰라요.

하지만 배고파서 절도하는 사람은 징역살이시키고 나랏돈을 함부로 해먹는
자들은 멀쩡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좋은게 아니지요.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데 돈 많이 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커지고 있는 것도 안좋은 징조입니다.

이런걸 바로 잡는 게 민주주의지요"

-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가장 시급한 게 있다면 무엇을 들 수 있습니까.

"내가 역사 바로잡기에 몰두하고 있듯이 각자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면
됩니다.

다만 사회의 틀이 제대로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지 못하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지 안으면 21세기도
없습니다.

새천년도 또 잘못된 역사로 일관하게 될 거예요"

-경제가 발전되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포함한 사회의 틀이 자리잡히지
않을까요.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성장만 추구하면 오히려 큰 문제가 생겨요.

민족의 결집력이 떨어지고 결국 성장잠재력이 약해집니다.

민주주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되지요함께 더물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일반 국민들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달라져야 합니다.

어려움을 헤치며 살아오느라고 다들 너무 각박해져 있어요.

자신을 한번씩 돌아볼 때 입니다.

바른 자세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의 잘못을 들추어 내고 자신의 실책은 아랑곳 않는 자세로는 선진화를
기대할 수 없어요"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사실의 교정이 아닙니다.

인식의 문제입니다.

출발점부터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겁니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은 무너지게 돼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알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그것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한국의 미래를 그려나갈 틀이 될 것이고 올바른
역사 이해가 그 토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 역사중 어떤 부분이 왜곡됐거나 잘못 알려져 있습니까.

"많은 부분이 있지요.

예를들어 일본인이 한국사람 이름을 도용해 지은 책으로 "추한 한국인"이라
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일본이 통치하기 전까지 한국에 학교가 하나도 없었는데
일본인이 들어와서 세웠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합방전 한국에는 학교가 3천개나 있었어요.

내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이준 김구 안창호 선생같은 선각자들이 리에 한개씩 학교를 세우기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했지요.

단군조선도 신화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입니다"

-1백년 역사중 우리에게 가장 큰 시련을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일본의 통치겠지요.

나는 합방이란 표현은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대한제국 황제가 서명을 거절한 데다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거니까 법률적으론 합방이 아니지요.

그런것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시정하고 새롭게 출발할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이 좋은 기회였지요.

그러나 그 기회를 이승만 정부가 모두 망쳐놨습니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제시대에 득세했던 세력들이 여전히 독립정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는 눈도 식민사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니 그 후의 역사야 불을 보듯 뻔한 거 아닙니까"

-법학자이신데 어떤 계기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요.

"본격적인 연구는 75년부터 시작했지만 그전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었어요.

특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법철학을 전공하면서 부터예요.

뿌리를 찾다보니 단군에 까지 이르게 되고 단군조선이 신화가 아닌 실제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누군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갖게 됐어요"

-새 천년은 "노인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건강 비결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마음을 비우면 됩니다.

욕심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몸은 세월의 나이테를 피할 수 없지만 정신은 다릅니다.

자신에게 치매가 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나는 일생을 공부하면서 살아온 덕분에 머리가 빌 틈이 없었어요.

치매같은 게 올 턱이 없지요"

-불편하신 점은 없습니까.

"일본에선 노학자에겐 나라가 연구실을 마련해주고 정년을 마친 학자들을
붙여준다고 해요.

새천년을 "노인의 시대" "역사 바로 세우는 시대"로 만들려면 이런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 남궁덕 기자 nkduk@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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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일본 메이지법대(1918~1924)
<>보성전문학교 법과교수(1925~1945)겸 경신학교 교장(1939~1946)
<>부산대 인문대학장(1946)
<>서울대 법대학장(1947~1949)
<>중앙대 법정대학장(1948~1957)
<>청주대 대학원장(1958~1962)
<>한국상사법학회 회장(1959~1972)
<>인천대 한국학연구소장(1993)
<>저서 =법학개론, 민법총칙, 현행어음.수표법,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
한국상고사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