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내년 8월까지의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31일 전격
사임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잇단 실정과 건강악화등으로 인한
권력누수다.

러시아는 지난 9월 체첸을 침공한 이래 지금까지 전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군통수권자인 옐친의 존재는 거의 잊혀져 있다.

"존재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대통령이 옐친의 최근 모습이다.

91년 6월 러시아 최초의 민선대통령에 오른 옐친은 두달 후 구소련 공산당
보수파와 공모한 군부의 쿠데타를 잠재워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장기적 국정비젼없이 즉흥적 정치로 일관해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다

특히 92년부터 실시된 가격자유화 정책으로 물가가 수천배로 뛰고 공기업
사유화 정책으로 인해 주식의 일종인 바우처를 통한 피라미드식 영업행위가
극성을 부리면서 민심이 그를 등졌다.

지난해 8월14일 한 공장을 방문해 "러시아 루블화의 평가절하는 절대
없다"고 공언했지만 불과 사흘뒤 평가절하를 발표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움직이는 병동"이라는 오명을 얻은 데서 알 수 있듯 옐친은 건강도 좋지
않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지금까지 14번이나 입원, 올해 기네스북에 국가수반중
가장 많이 입원한 사람으로 올랐다.

옐친이 일찍 사임한 것은 최근 자신이 후계자로 지목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에게 실질적으로 권력을 이양해 퇴임이후의 안정을 노리자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치러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선거에서 옐친의 지지를 등에 업은
단합당의 푸틴총리는 예상을 뒤엎고 선전해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돼 왔다.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푸친에게 임기중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국정안정과
정권재창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옐친의 의도대로 푸틴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있을지는 낙관을
불허한다.

그의 사임을 계기로 러시아 정국이 더욱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적지 않은
데다 차기 대권을 놓고 푸틴과 경쟁하게될 프리마코프 전 총리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 등도 공세의 고삐를 바짝 당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김재창 기자 char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