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만으론 안 됩니다. 과학기술을 보는 사회 전체의 눈이 바뀌어야지요"

한국경제신문이 새해 1월1일자부터 "기술 헤게모니를 잡자"며 "테크노
코리아"연재를 시작하자 과학기술계의 한 원로가 취재팀에 E메일을 보내왔다.

지난 30년간 연구개발에 젊음을 바쳤다는 그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냉대"에 섭섭함부터 쏟아냈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 분위기나
국가정책은 어떻습니까. 과학고의 우등생들이 법대나 상대를 지망하고 공대생
은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매달리는 게 현실 아닙니까. 한국의 관료중
과학기술계 출신이 몇명이나 됩니까. 제가 알기론 전체의 3%도 안되요.
과학기술부 안에서도 기술고시 출신은 행시 출신에 비해 찬밥이기
일쑤입니다"

말로는 과학기술을 떠들면서 실제론 과학기술을 무시하는 우리의 몰인식을
꼬집은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에선 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느냐"며 과학기술인들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게 그의 반문이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야말로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현실이 그랬다.

뿌리깊은 사농공상의식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실패에는 가혹하지만 보상엔 인색한 과학기술개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서도 그들은 늘 주변부였다.

IMF위기땐 대덕의 과학자들조차 길거리로 내몰려야 했다.

작년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문사는 교수 학생 등 2백45명을 대상으로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한국에서 과학기술자 출신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전체 응답자중 71%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중 60%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고작 25%만이 "20~30년안에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밝혔을 뿐이다.

과학기술인들 스스로도 사회적 인식개선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는
셈이다.

차라리 자조적인 시각마저 엿보인다.

물론 과학기술자중에서 꼭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회적인 풍토는 중요하다.

21세기 국부의 원천이라는 과학기술도 결국은 사람이다.

똑똑한 한명이 수만명을 먹여 살리는 게 과학기술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의 과학기술인들이 꿈을 품고 연구개발에 매달릴 때
"테크노 코리아"는 당겨질 수 있다.

과학기술인에 대한 관심과 존경은 그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차병석 산업2부 기자 chab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