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의 조용한 도시 시애틀에서는 21세기를 대표할 만한 두
세력이 정면충돌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새 자유무역체제(뉴 라운드)를 논의하기 위해 열렸던 세계무역기구(WTO)
제3차 각료회의가 NGO들의 격렬한 시위로 무산된 것이다.

전세계 80여개국 1천3백개의 시민단체와 노조에서 파견된 5만여명의
피플파워가 집결, "WTO 뉴 라운드의 모라토리엄"을 외치며 현지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에 맞섰다.

결국 WTO 각료회의는 NGO들의 조직적인 힘에 밀려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퇴각해야했다.

WTO와 NGO는 각각 "국경없는 무한경쟁"과 "시민의 힘"으로 상징되는
세계사적 흐름이다.

시민운동으로서의 NGO 효시는 1863년 스위스에서 창립한 국제적십자운동.

국적을 불문하고 전쟁부상병에게는 인권의 차원에서 인술을 베풀며 시작됐던
이 운동은 전세계 분쟁지역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2차대전이후 대중사회가 도래하고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NGO는 급속한 속도로 증가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의 샐러먼교수팀은 세계 주요 22개국의 NGO를
조사한 결과 이들 나라에서 모두 2천9백만명이 활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이 1년에 쓰는 돈은 약 1조1천억달러.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천3백조원이 넘는다.

2000년 예산 92조원의 14배에 달하는 규모다.

90년대 들어 노벨평화상을 받은 단체만도 국제지뢰금지운동(ICBL), 국경없는
의사회 등 두 단체나 된다.

NGO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인 미국에만 약 1백20만개의 크고 작은 시민단체
가 활동중이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도 한 나라에 수십만개의 시민단체들이 있어
그 사회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아시아국가들의 NGO활동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그러나 최근들어 일본이 시민단체를 지원하기위해 NPO
( Non Profit Organzation ) 법을 제정하고 한국에서도 각 기구들의 국제연대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NGO들의 활동영역은 NGO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지구중심에서 우주까지, 태아에서 장묘까지, 과거 역사에서 미래까지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다.

이 중에서 국제적인 규모로 움직이는 거대 NGO단체들은 대체로 인권, 환경을
양대 축으로 소비자, 노동, 정부감시분야 등에 몰려있다.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한국의 2천3백명 회원을 포함, 세계
1백60개국에 1백40만명이상의 회원을 두고있다.

후원자만도 수백만명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국제NGO로 꼽힌다.

독재정부에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인 엠네스티는 세계 양심세력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77년에는 노벨평화상, 78년에는 유엔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엠네스티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단체다.

시인 김지하의 오적필화사건을 계기로 지난 72년 한국지부가 설립된 이후
김대중 대통령 등 당시 군사정부에서 핍박을 받아오던 많은 민주인사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최근 세계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환경단체로는 "과격한" 해상시위의
대명사 그린피스가 꼽힌다.

28년전인 지난 72년 작은 돛단배를 탄 두명의 그린피스대원(그린피스는
대원들을 회원이 아닌 "전사"라고 부른다) 프랑스정부의 핵실험을 반대하기
위해 핵실험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돛단배는 이를 저지하던 해군 전함에 부딪혀 크게 파손되고 이 장면이
전세계를 통해 보도됐다.

이후 프랑스는 13년만에 대기권 핵실험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 7월에는 일본으로 반입되는 플루토늄 운반선을 막기위해 현해탄에서
해상시위를 벌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흔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맹활약으로 그린피스는 이제 규모
면에서는 국제적 골리앗단체로 성장해있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본부를 두고 전세계 32개국 43개 지부를 갖고 있다.

예산은 연간 1억5천만~1억7천만달러로 각국 회원들이 30~1백달러씩 내는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소비자보호운동도 NGO의 주요한 활동무대다.

미국의 소비자연맹 회장을 역임한 콜스턴 원 박사는 "노동운동이 19세기의
위대한 발명이라면 소비자운동은 20세기의 위대한 발명"이라고 말한다.

대량생산체제에서 기업들의 속임수에 말없이 당하기만 해야했던 소비자들은
지난 65년 30대 젊은 변호사 랄프 네이더가 자동차회사 GM을 상대로 한
소송을 기폭제로 급속히 조직화됐다.

국제교역이 활발해지고 다국적기업들이 보편화되면서 소비자운동도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했다.

현재 세계 1백9개국에 있는 2백39개 소비자조직의 연합체인 CI
( Consumer International )가 결성돼자본의 횡포에 맞서고 있다.

< 김광현 기자 kk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