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개도국 모두가 공감할 수있는 균형적 절충안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이크 무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지난해말 시애틀에서 열렸던
WTO각료회의가 실패한 것은 "각국의 의견차가 워낙 심했던 때문"이라고
털어놓으면서 "그러나 회원국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내 반드시 뉴라운드
협상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WTO 회원국간에는 이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내야 한다는 공담대도 형성돼 있다"며 여전히 희망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느 무역과 환경문제를 연계시키는데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무어총장은 20세기에 인류가 엄청난 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발전이 함께 이뤄진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무어총장을 만나 WTO에 대한 얘기와 21세기 전망 등을 들어봤다.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20세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엄청난 발전과 진전이 있었다.

10년전만 해도 아시아와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의 많은 국가가
극우나 극좌 성향의 정부 통치하에 있었다.

이 지역 국민들은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나 환경관련 이슈에 대해서 조차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가 없었다.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철의 장막도 찢어졌다.

그 누가 넬슨 만델라가 자유를 찾고 남아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또 누가 감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과거 적성국이었던 나라로 확대
되리라고 상상했겠는가"

-역사를 발전시켜온 동력은 뭐라고 보는가.

"지난 50년간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행진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누린 시대가 과거에 있었는가.

역사를 뒤돌아 보면 이처럼 많은 인구가 투표와 여론의 장을 통해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가졌던 적은 없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발전이란
두 가지 요소가 역사를 움직여왔다.

이들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연결된 요소들이다.

정치적 압박에서 해방된 인간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투표권이다.

이 자유는 단지 유럽적 가치가 아니라 세계적 가치가 됐다"

-지난해 시애틀에서 열린 WTO 뉴라운드 각료회의는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여러가지로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원래 지역별 및 나라별로 의견차가 매우 컸었는데 이에 대한 사전조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선진국들간에도 의견을 맞추기 힘들었다.

게다가 비정부기구(NGO)들까지도 대거 몰려들어 실력행사로 나서는 바람에
회의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됐다"

-올해도 뉴라운드 협상은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적지 않다.

"물론 많은 난관이 따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WTO 회원국간에는 이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역이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균형적
다자간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데 회원국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다자간 통상 시스템은 국제교역과 세계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국제 무역기구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점점 많은 국가들이 다자간 무역 체제로
들어왔다.

50년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 초기만 해도 가맹국이
20~30개에 불과했지만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는 1백23개 나라가 참여했다.

그리고 95년 1월1일 공식출범한 WTO 회원국 수는 130개국이 넘는다.

회원국의 80%는 개도국이나 경제 전환기에 있는 국가들이다"

-개도국들 사이에선 다자간 협상이 강대국들에게 너무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뉴라운드 협상을 개도국과 선진국간의 대립관계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협상에서는 어느 나라건 자국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얻으려한다.

개도국에선 선진국이 좀더 많은 투자를 해주길 바라고 반대로 선진국은
여기에 이런저런 조건을 붙인다.

개도국과 선진국에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절충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무역문제와 환경문제를 연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총장은
환경문제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환경문제는 오늘 갑자기 생긴 이슈가 아니다.

석탄을 주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19세기말에도 도시공해는 심각했다.

19세기 런던시민들은 건강에 해로운 스모그속에 찌들어 생활했다.

하지만 지금 테임즈강은 낚시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일부에서는 부자들이 세계자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세계를 더욱 오염시킨다
는 논쟁이 있다.

하지만 난 이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일수록 교육수준이 높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핵가족이다.

즉 인구수도 줄게된다.

또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이 많은 사회집단은 민주정치와 경제안정이 실현
되면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자연 보호 및 환경사회를 추구한다.

이 또한 자유와 진보를 의미한다.

민주적 정치와 경제 가치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이는 환경보호로
이어진다.

이같은 나의 주장이 불합리하다는 논쟁을 불러 일으킬지는 몰라도 경제가
환경을 관리하고 보호한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나는 한동안 정보와 기술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오면 인간은 기계화
내지 노예화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중의 하나였다.

조지 오웰의 작품 1984년을 읽은 후 나는 결국 정보와 기술발전은 대기업과
강력한 정부가 인간의 개인성을 말살하고 자유로의 진보를 방해하기 위한
억제수단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동유럽이 자유로워진 것은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독재자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정보의 폭발로 그 권력은 힘을 잃고 말았다.

통신기술의 발전은 민주화에 기여했다"

-20세기중 가장 진보한 분야를 꼽는다면.

"무엇보다도 가장 엄청난 발전을 보인 분야는 식량생산이다.

모짜르트가 살던 시대만 하더라도 영양실조로 고생하던 사람이 허다했다.

난 어린시절에 중국과 인도에서 기아로 죽어가던 사람이 많다면서 음식을
남기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한다.

녹색혁명의 성공은 식량가격을 상대적으로 내렸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인도의 배고픈 사람수를 엄청나게 줄였다.

20년전 세계는 대기아의 직전에 와 있다고 했다고 경고한 폴 얼리히(Paul
Erlich)의 예측은 빗나갔다.

아직까지 기아문제가 심각한 곳은 아프리카다.

이 지역의 빈번한 가뭄도 이유겠지만 마르크스주의 정부와 군사독재 정부에
의해 악화된 내전과 지역분쟁도 기아의 원인이다"

-총장은 미래의 짧은 역사(A brief history of the future)란 저서에서
민주주의적 적자(Democratic deficit)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

"민주적 적자란 좀 반어적 표현이다.

아직도 세계 도처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고 민주화에 예상치
못한 손실이 따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계는 50년전에 비해 민주적 발전을 했다.

얼마전만 하더라도 국제교역문제는 일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젠
일반 시민들도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

환경주의자나 여성운동가들도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능동적으로 의견표시를 한다.

세상이 발전하면 할수록 개인이나 단체의 의견표현은 강해질 것이다.

이제는 NGO들의 주장도 국제적 영향력을 갖게 됐다.

경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무역과 교역질서에 의문을 제시하며 잘못된 점이
시정되도록 의견을 제시할 의견을 제시할 정도가 됐다.

따라서 이같은 힘은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데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21세기 지구촌은 어떤 모습을 띨 것으로 보는가.

"예측이란 많은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과거 많은 이들이 미래 전망을 했지만 항상 들어 맞진 않았다.

19세기 경제학자 스탠리 제본스(Stanley Jevons)는 영국은 석탄자원의
고갈로 경제 강국의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1972년 로마 클럽역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통해 81년경이면 금광이
고갈되며 석유는 92년, 구리와 납 천연가스는 93년에 동이 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틀렸다.

하지만 앞으로 변화가 가속화돼 21세기 사회는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특히 DNA 기술을 응용한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는 등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 발전하고 있다.

DNA 응용 기술 발전은 인간 생명과 건강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도 있지만
원래 의도와 반대로 사용될 경우에는 도리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도덕성이 결여된 과학과 영예롭지 못한 기술, 인간성이 배제된 사업,
믿음과 공평함이 없는 정부는 세상을 전체주의에 빠뜨릴 위험을 안고 있다"

-21세기 세계 지도자들의 과제들 든다면.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은 마지막 끝을 의미하지만 끝은 없다.

그렇다고 희망을 포기하는 것은 더 어리석다.

희망은 장려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미래를 모른다.

우리는 단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뿐이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이기에 융통성있게 준비해야 한다.

성장과 안정을 위해선 글로벌리제이션과 민주적 국제화를 병행해야 한다.

다행히도 지금 세계는 서로간의 의존과 협력이 충돌을 대체하고 있는
추세다.

법과 민주적 제도로 지배되는 세계는 더할 나위없이 근사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는 안전하고 번창하는 세계를 지향하는 오늘날의 세계지도자들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 대담=강혜구 특파원 hyeku@coom.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