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말자"

전기배선기구 업체인 장안글로벌(대표 장진욱)의 임직원들은 새 천년을
맞으면 이같이 다짐했다.

지난 97년말 외환위기 때 부도를 당한 쓰라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당시 46년간 일궈온 회사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고초를 겪었다.

모 은행에서 대출해주기로 한 시설자금 18억원이 IMF 사태로 8억원으로
깎인 게 결정적인 부도원인이었다.

장안글로벌의 전신인 장안공업은 지난 97년 여름부터 부채정리를 위해
경기도 오산공장과 부지 1만여평을 팔고 새로 경기도 안성에 협력업체들을
입주시킬 공장설립을 추진했다.

전기배선기구와 차단기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 80년까지 국내시장의
7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알짜 회사였다.

그러다 80년대초 3~4개 대기업이 경쟁업체로 뛰어들면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최종부도가 나던 지난 97년 12월3일.

당시 장진욱 이사는 흥분한 채권자들에 휩싸였다.

일부는 흉기까지 들고와서 위협했다.

창고에 쌓여있던 재고물품(약 10억원어치)을 내놓으라는 채권자들에 의해
8시간 이상을 여관에 감금되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키워 온 회사를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반드시 일어서야 한다는 각오로 2층 여관방에서 탈출했습니다"

장 대표는 아버지 장시용 사장을 대신해 사태수습에 나섰다.

갖은 협박을 무릅쓰고 채권자들을 만나 설득했다.

마침내 자신이 대표이사를 맡는 장안글로벌이라는 새 회사를 세워 재기를
꾀하기로 했다.

회사를 돌리면서 부채를 갚아간다는 "임의화의" 형식을 택한 것.

채권자들과는 돌파구를 찾았지만 직원들의 고용문제가 남았다.

우선 생산직 사원들은 협력업체에 재취업을 권하는 방식으로 설득했다.

70여명에 달하던 관리직 사원들이 문제였다.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사원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11명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내보내야만 했다.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다.

"그해 겨울은 정말 추웠습니다. 14년을 살았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창업주인 할아버지마저 충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부도 회사라는 오명 때문에 영업은 쉽지 않았다.

10년 이상 관계를 맺어 온 거래처에서조차 "얼마나 버틸까"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오랜 신용에 힘입어 98년 여름부터는 회생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재기에 나선지 1년반이 지난 작년 가을 장진욱 사장은 회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자진해서 급여를 삭감하고 생산성을 높인 결과 98년 매출이 59억원에
달했다.

99년에도 7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장의 어음도 발행하지 않고 무차입경영을 통해 이룬 결과여서 더욱 값진
성공이었다.

장 대표는 번 돈으로 가장 먼저 퇴직사원들의 밀린 임금을 줬다.

또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떠난 직원 가운데 18명을 다시 불러들였다.

앞으로 장안글로벌이 갚아야 할 부채는 68억원.

장 대표는 3년안에 모든 채무를 정리한다는 목표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2년간 교과서에선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과 공부를 했다"며
"직원들은 물론 거래업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책임있는 기업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장경영 기자 longru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