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소프트왕국의 길, 루트128 ]

"The.Commonwealth(더 닷 커먼웰스)"

미국 동부 보스턴 외곽에 있는 첨단산업기지 "루트128" 지역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문구다.

이 문구는 매사추세츠 주정부와 이 지역 정보통신기업들이 지역경제 부흥의
깃발을 들고 함께 내건 슬로건이다.

더 닷 커먼웰스는 매사추세츠주를 인터넷 도메인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운동의 지향점은 매사추세츠주를 인터넷에 관한 기술과 비즈니스의 최고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캠페인의 밑바닥에는 실리콘밸리에 대한 강한 라이벌 의식과 최근 급성장
하고 있는 뉴욕 오스틴 등에 뒤질수 없다는 자존심이 깔려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폴 셀루치 주지사와 1백여명의 이 지역 정보통신기업
최고 경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보스턴 시내 과학관에서 거창한 더 닷
커먼웰스 발대식을 가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라이코스의 로버트 데이비스 회장도 참석해 "인터넷
매사추세츠"를 선창했다.

보스턴 지역은 전통적으로 미국 첨단기술의 심장부였다.

스탠퍼드가 실리콘밸리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면 이곳에서는 MIT와 하버드가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개발을 주도했다.

특히 MIT는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뛰어난 두뇌와
기술력으로 보스턴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지난 1960년대에 최초의 미니컴퓨터인 PDP-1을 만들어내고 상업적인 목적의
CAD(컴퓨터지원설계)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였다.

1970년대에는 개인용컴퓨터(PC))인 "알테어"를 개발, 컴퓨터 확산의 획기적
인 전기를 마련했다.

이어 BASIC 언어, 워드프로세서 등도 만들어 내는 등 보스턴은 세계 컴퓨터
관련 기술개발의 중심이었다.

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곳에는 정보산업단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보스턴에서 서북쪽으로 약 20km정도 떨어진 128번 도로를 가운데 두고
형성된 이 단지는 "루트128"으로 불렸다.

당시에는 "매사추세츠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루트128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빛을 잃기 시작했다.

이곳을 기반으로한 미니컴퓨터 생산업체들이 실리콘밸리의 PC를 무기로 한
드라이브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을 대표했던 디지털이퀴프먼트(DEC), 왕컴퓨터, 데이터제너럴 등은
파산하거나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에 흡수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렇게 되자 루트128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가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
으로 떠올랐다.

버클리대(UC버클리)의 애널리 삭시니언 교수는 "루트 128은 몇몇 대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대학의 연구실과 기업은 따로 놀게 됐다. 결과적으로
외부의 노하우를 받아들이고 내부의 지식과 정보를 서로 공유하거나 교환하는
데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는 말로 "보스턴 몰락"의 원인을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루트128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MIT와 하버드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생명공학 등 3대 첨단기술을 무기로 다시
보스턴의 영광을 되살리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태세다.

MIT의 한국인 교수 서남표 박사는 "MIT는 여전히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분야
에서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기술들을 적극
산업현장으로 이전해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얘기다"라고 말한다.

특히 이 대학 화이트헤드연구소는 에이즈바이러스(HIV) 치료제 개발과
암세포 전이과정 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인간게놈 연구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연구소에서는 최근 인공근육과 휴먼로봇 개발의 성과를 거두었다.

또 사용자가 가상물체를 느낄수 있도록 고안된 3차원 마우스도 개발했다.

기계 분야에서는 상품마다 ID를 부여해 완벽한 공급망 관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오토-ID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상용화되면 상품에 칩을 부착함으로써 모든 제품의 탄생부터 소멸
까지의 사이클을 한눈에 알 수 있다.

MIT가 보유한 이들 기술은 독보적인 수준인데다 상용화가 이뤄질 경우
엄청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매사추세츠가 "더 닷 커먼웰스"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눈에 띄는 풍경은
잦은 조찬회동.

요즘 매리어트 등 보스턴 주변 고급 호텔들은 아침마다 손님들을 치르느라
몹시 부산한 모습들이다.

실리콘밸리에 비해 뒤진 것이 바로 "정보공유와 협동성의 부재"라는 자각
에서 나온 새로운 변화다.

이곳 기업인들간의 미팅은 물론 MIT와 하버드의 교수.연구원들과 기업인들
도 수시로 만나 새로운 기술과 연구성과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 부쩍
늘었다.

"이같은 모임을 통해 대학의 사람들은 신기술 연구의 모티브를 찾고 기업인
들은 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루트128도 이제 실리콘밸리식 네트워크
를 형성해 가고 있다"고 MIT의 박사과정에 있는 마틴 켈페퍼씨는 말한다.

이같은 "보스턴 부흥"의 바람을 타고 최근 오라클 지멘스 에릭슨 노키아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생산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동기를 MIT와 하버드의 우수한 두뇌와 기술이 제공해 주고 있다.

< 보스턴=이학영.김태완 특파원 hyrhee@earthlink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