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찬제 < 서강대 교수/국문학 >

여전히 문제는 경제인가.

여러 통계조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새해 소망 가운데 으뜸은 "경제 호전"
이라고 한다.

아울러 10년 이내에 경제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바라는 대로 매사가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런 마음들이
주목된다.

IMF 관리체제 이후 움츠러들었던 마음들이 새롭게 기지개 켜고자 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뒷걸음질을 쳐야 했던가.

또 얼마나 상실감에 젖어야 했던가.

상실과 박탈감 좌절감 따위가 노숙자나 실업자의 거리에만 있었던게
아니었다.

전국에 만연돼 있던 우리 경제사적 세기말의 징후였지 싶다.

새 천년을 맞았다고 해서 금세 모든 경제 지표에 초록 신호등이 켜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도 그 초록 신호등을 향한 소망스런 마음의 기지개쯤은 매우 유효한
것이 아닐까.

좀더 좋은 경제 여건 아래에서 양질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욕망의 기본적인
발로이겠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경제적 동물인 인간의 근본 문제는 다름아닌 경제였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그랬다.

맹자에 나오는 "무항산자 무항심"이란 구절도 그런 경우다.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면 마음의 평화조차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서양경제사의 허구적 축소판으로 보이기도 하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보자.

무인도에 홀로 살아남은 크루소가 난파된 배에서 맨 먼저 챙기는 것도 역시
"항산"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항산의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크루소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 사회의 무질서 폭력 거칠음 황폐함 따위는 대개
무항산으로 인한 무항심의 소산이 아니었을까.

물론 항산과 항심의 선후 관계에 대한 논란이 닭과 계란의 경우처럼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비는 부질없다.

그 한쪽이랄 수 있는 항산을 위한 항심, 다시 말해 "경제하려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경제회복의 조짐과 새 천년의 시작이라는 축제적 분위기에 힘입어 오그라
들었던 마음들이 힘차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더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경제의 신명을 지피는 것으로 연결지어야 한다.

신명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선진경제의 틀이 구축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신나는 경제는 개개인들의 경제적 믿음과 소망에서 출발한다.

루스벨트도 뉴딜정책을 펼치면서 경제 피라미드 저변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믿음과 소망을 강조한 바 있다.

아이젠하워의 다음과 같은 발언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우리 경제는 절대로 연방준비은행 제도나 재무부 국회 백악관 등이 움직
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 4천3백만가구의 생각과 행동이 이 나라의
경제를 움직입니다"

바로 이같은 분위기나 여건이 갖추어질 때 우리는 경제하려는 마음과
의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지난 시절처럼 청와대나 국회의 결정에 대해 개별 경제주체들이 속수무책인
경우라면 경제하려는 마음은 언제나 겨울일 수밖에 없다.

툰드라의 언 땅에서 어떻게 신명의 불꽃을 지피겠는가.

경제구조나 체질의 혁신이 긴요하다.

우리 경제의 밑흐름을 바꿔야 한다.

한편에서는 경제적 효율성이나 정당성에 걸맞은 경제체질로 혁신해 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작은 경제주체들의 "경제하려는 마음"들이 신명의 소용돌이
를 일으킬 수 있게끔 밑흐름을 바꾸어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경제는 또한 윤리적인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

신명 혹은 신바람은 나만의 독아적인 즐거움에서 그치는게 아니다.

경제공동체 혹은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신바람은 더욱 커진다.

합이 양이 되는 포지티브 섬(positive sum) 게임의 경우처럼 신명나는
경제를 하려는 마음에는 언제나 다른 경제주체에 대해 진심으로 배려하는
윤리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경제논리는 위축된다기보다 심화 확산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경제논리와 경제윤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을 병행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도 성장시키고 환경도 지켜야 하듯 경제논리와 경제윤리 역시
한번에 쫓아야 할 두 마리 토끼다.

신명나는 경제와 윤리적인 경제.

이를 바탕으로 경제하려는 마음을 불 지피고 북돋울 때 우리가 거둘 수
있는 "최대의 효과"는 많을 것이다.

창의성이나 기술혁신, 경쟁력 제고를 비롯한 여러 경제적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는가.

진정한 경쟁력은 바로 그런 마음 바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경제하려는 마음이요, 그 마음 바탕이다.

진정한 경제적 마인드 맵 운동으로 우리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기를 바란다.

< wujoo@ccs.sogang.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