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채권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생각은 탓할 이유가 없지만 이를 위해 예금은행
들까지 채권시장으로 끌어들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금융의 겸업화 추세가 세계적 현상이라고는 하더라도 "증권업과 예금은행
업무에는 일정한 구분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채권시장 관계자들을 만나
채권안정기금을 해체하는 대신 시중은행들도 채권인수및 판매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등 시장안정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시중은행들이 이미 국공채를 판매하고있는 만큼 굳이 회사채라고 해서 이를
막을 이유가 없고 부진한 채권수요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서라도 은행 지점에
서 직접 채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국의 이같은 방침은 일견 금융의 겸업화 추세에 부응하고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처럼 보이는게 사실이다.
금융업에 관한한 매우 보수적인 미국도 지난해 글래스 스티걸
(Glass-Steagal)법을 개정하면서 금융업 간의 장벽허물기에 나선 터에
시중은행의 채권판매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일응 타당하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에 채권 판매를 허용한다고 해서 당장 채권수요가 늘어날
것 같지 않고 대부분 은행들이 이미 자회사를 통해 증권업을 겸영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같은 조치가 과연 금융시장과 증권시장의 조직원리에 맞는
지도 의문스런게 사실이다.
시중은행들이 팔고있는 신탁상품만 하더라도 한때 2백조원에 달하던 판매고
가 지금(5일 현재)은 1백17조원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떨어져있는 터에
신탁보다 위험성이 더욱 높은 회사채가 은행창구에서 잘 팔릴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비현실적 생각이다.
은행이 직접 채권영업을 겸영하는 것도 신중히 생각할 문제다.
이미 대부분 은행이 증권자회사를 두고 있는 터에 스스로가 직접 위험자산인
회사채 인수와 판매에 나서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미국도 자회사를 통한 상호진출을 허용한 것일 뿐 동일한 주체가 하나의
장부로 은행업과 증권업을 겸영하도록 한 것은 아니다.
더욱이 최대의 금융현안으로 부상해있는 투자신탁 부실만 하더라도 이는
지난 90년대 초의 주가 폭락과 지난 97년의 회사채 폭락, 98년 대우사태등
증권시세의 급격한 가격변동성과 높은 위험성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당국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