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

경제부총리를 다시 두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2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이뤄지는 원점회귀다.

IMF 사태 후 경제정책의 통합조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경제부총리를 없앤 것 자체가 잘못이다.

경제부총리에 권한이 너무 집중되어 폐해가 컸다는 것이 폐지명분이었다.

그러나 그 폐해는 부총리 자리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이 부총리를 잘못 썼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모든 경제 문제를 대통령이 다 챙길 수는 없는 일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정치적 부담도 크다.

경제부총리는 1960년대 3공화국 때 신설돼 그런대로 많은 역할을 했다.

경제부총리는 경제기획원을 맡아 경제정책을 이끌었다.

내각에 총리가 있지만 경제 문제만은 부총리가 책임지고 하라는 뜻에서
일정 범위 내에서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때문에 경제팀의 인선엔 부총리의 뜻이 많이 반영되었다.

평소엔 경제팀장으로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관련시책들을 협의
조정했다.

지금과같이 대통령이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고 유연성이 있다.

대통령은 평소 주요지침만 주고 맡겨 놓았다가 정책기조를 바꿀 땐 부총리를
갈면 된다.

경제정책은 적극적으로 일을 벌이면 그것대로, 안정 위주로 하면 그것대로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과거 경제부총리가 잘 돌아갈 때는 한 3년을 주기로 부총리를 바꿔
성장과 안정 기조를 교차시켰다.

맨 처음 장기영 부총리가 명실상부한 경제팀장 노릇을 하면서 일을 크게
벌였다.

그 다음 박충훈, 김학렬, 태완선, 남덕우, 신현확씨 등으로 이어졌는데
정책 컬러가 기가 막히게도 순환을 이루었다.

부총리 자리가 빛을 잃은 것은 임기가 평균 1년으로 줄어들면서 경제정책
구성에 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 뒤부터다.

같은 부총리라도 대통령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부총리 자리를 만든다 하여 저절로 굴러가면서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상응한 제도적 정치와 환경 정비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부총리에겐 경제팀장을 맡을 수 있는 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정부 예산권을 주는 문제와 경제장관 회의의 부활을 생각할
수 있다.

예산권 없이 경제 정책을 총괄.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경제장관 회의나 간담회 같은 공식기구가 있어야 경제 정책들이 사전에
걸러질 수 있을 것이다.

예산권을 주기 위해선 정부 부처의 재편이 필요하다.

재정경제부 장관이 부총리가 되고 기획예산처를 붙이는 방안, 기획예산처
장관이 부총리가 되면서 물가 기획 부문을 붙이는 방안, 국고. 재정.외환을
맡는 옛 재무부를 다시 떼어내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운용면의 뒷받침인데 이것은 제도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대통령이 신뢰하고 일을 할 수 있게 밀어주는 것이야말로 부총리제가
성공할 수 있는 핵심요건이다.

한번 임명했으면 믿고 권한을 줘야 하는 것이다.

경제팀을 고를 때도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도 부총리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

경제부총리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여러 곳으로부터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정치적 압력도 심하다.

그것을 대통령이 막아주고 또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혹시 불똥이 튈까봐 1년 단위로 도마뱀 꼬리 자르듯 해서는
결코 부총리제가 성공할 수 없다.

경제정책이란 반드시 잡음이 있게 마련이고 또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부총리가 힘을 갖게 되면 총리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다른 국무위원들과
마찰을 빚게 되는 부작용도 생긴다.

그것을 조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부총리가 될 만한 사람을 부총리로 임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무리 경제부총리가 법적 권한을 가져도 각기 입장이 다른 경제장관들을
설득해 끌고 가기가 쉽지 않다.

다른 장관들로부터 승복을 받아야 한다.

과거 경력도 그렇고 인격, 경륜, 안목도 부총리에 걸맞아야 한다.

또 정치력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정통성과 도덕적 권위에다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경제부총리는 정치적 안정기와 혼란기, 호황 때와 불황 때, 분위기를 띄울
때와 구조조정을 할 때 필요한 사람이 각기 다르다.

그에 맞춰 사람을 써야지 타이밍이 안 맞으면 멀쩡한 사람 우스꽝스럽게
되기 십상이다.

경제부총리는 두느냐 안 두느냐보다 누구를 앉힐 것인가가 더 핵심관건이다.

< sericws@seri21.org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