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본사 논설실장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1백64명의 "총선출마 부적격자" 명단은
어쨌든 눈길을 끈다.

1백67명의 리스트를 내놨다가 몇시간만에 두차례나 수정한 것은 선정과정의
졸속을 말해주는 것이고, 국가보안법개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것이 옳은지 선정기준 자체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없지
않지만, 그 파장은 주목할만 하다.

경실련에 이어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등 1백여개 시민단체도 내주중
부적격자명단을 공표할 예정이라니 더욱 그렇다.

여야가 모두 기분 나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이런 운동을 정치권주장처럼 못하게 하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유권자의 알 권리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다.

예컨대 그동안 있었던 비리사건들을 종합해 그 관련의원명단을 작성해
발표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선거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관위가 "낙선운동은 불법이지만 공권부적격자 리스트공개는 꼭 그렇게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타당하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시민단체등 유권자들의 감시와 엄정한 평가는
어떤 형식으로든 강화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또다른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점도 있다.

경실련이 발표한 이번 출마부적격자 명단만 하더라도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을 우선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개혁입법 반대등 시각에 따라서는 문제삼을 사안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
비리관련 의원만해도 그 명단이 길기만 하다.

왜 그럴까.

탐욕스런 사람들을 잘목 뽑은 때문이라고 간단히 설명해서 과연 충분한 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비리관련의원의 명단을 모아 공개하고 그런 사람들이 다시 뽑히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긴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국회의원 비리를
근절시킬 수 있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방법일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게 돼 있는 정치환경 아래서 돈과 철저히 무관한
의정활동을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무리다.

정치인 사정이 항상 표적사정시비로 이어지는 까닭도 그래서일 것이다.

과연 정치자금이란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회의원이 몇사람이나
될지 모르겠다는 정치인들의 얘기를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정도로 흘려
들어서는 정치인 비리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재산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나 정치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정치자금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전환이 있어야한다.

얼마전 법인세의 일정비율을 정차자금으로 돌리도록 제도화하자는 얘기가
나왔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아 꼬리를 감춘 적이 있다.

선거공영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냉냉한 여론에 부딪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년 한햇동안의 국회만 되돌아봐도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거부반응은
당연하고 그래서 정치자금 국고부담에 대해서도 앨러지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제 값을 치르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 싸구려 저질에
자족할 것인가.

재화나 용역과 마찬가지로 정치도 질과 가격은 상관관계가 있다.

국회의 입법조사기능을 강화하고, 일정비율이상의 국회의석을 가진 정당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은 국고에서 부담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때가 됐다.

실제로는 엄청난 돈이 필요한데도 음성적인 방법으로나 이를 조달해야하는
현실, 그래서 모금능력이 당내에서의 입지를 결정하는 정치여건아래서는
정치인은 털면 먼지가 날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이미지가 좋은 각계의 명망가들을 영입하기위해
야단이다.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겠지만 어쨌든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이런 새 얼굴들이 충원된다고 해서 정치가 얼마나 달라질까.

4년후에 경실련이나 참여연대가 발표할 17대 총선출마 부적격자 명단은
짧아질가.

적어도 16대때 스카웃된 새로운 얼굴들이 여기에 포함되는 불상사는 과연
없을 것인가.

20,30년간 경제계.관계.학계에서 그 나름대로 자기 이미지를 쌓아온
사람들을 끌어들여 한 순간에 몹쓸 사람을 만드는 블랙홀이 정치라면
심각한 문제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정계는 물론이고 다른 쪽에서도 리더십의 공백이
빚어지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꼴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곰곰히
따져봐야한다.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같이 이미지가 나쁘고, 이미지가 괜찮은
사람은 경험이 없는 사회가 우리 사회가 아닌가.

왜 그런 꼴이 됐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자금 때문이다.

정치에 참여하면 구린 곳이 생기게 마련인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정치자금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없는한 부적격자명단은 글자그대로
몹쓸사람만 양산할 뿐 정치발전을 가져오지 못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