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총리로 지명된 박태준 총리서리의 경제철학에 대해 정.재.관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총리서리는 "정치총리"였던 김종필 명예총재와는 달리 경제팀을 진두지휘
하는 "경제총리" 역할을 수행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1970~80년대 "포철 신화"를 일궈낼 정도로 실물경제에 정통한 그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자문역을 맡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수습하고 "빅딜" 등 금융, 기업구조 개혁에 깊숙히 개입했기 때문
이다.

박 총리서리의 경제철학은 기본적으로 "성장론" "실용주의" "실물경제
우선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자주 얘기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실용주의 성향이 짙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뉴 밀레니엄시대에는 성장론과 분배론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만 그래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성장없이는 곤란한 것 아닌가"
라며 성장을 전제로 하는 분배정의 실현을 강조한 점도 그의 경제노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박 총리서리는 재벌개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포철 한 기업의 경영에만 전념, 세계적인 회사로 키운 전력 때문에 대기업
의 문어발식 경영에는 단호한 입장이다.

그는 "대기업들은 계열구조를 3~4개의 핵심구조로 재편해야 하며 단순히
계열사를 줄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잉.중복투자와 차입경영을 청산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대기업 구조개혁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IMF 체제를 어느정도 극복한 시점인 최근에도 "외환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성공했지만 본격적인 개혁은 지금부터다", "기업구조조정은 계속
해야 하며 기업인들이 가능한 범위내에서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다.

이에따라 박 총리서리가 본격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 경제개혁 고삐를 한껏
당길 가능성이 높다.

자민련 총재시절인 지난 99년 7월 그는 임시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무서운
세계화 시대의 경제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집중적
으로 강도있게 추진해 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밝혔었다.

그의 강한 의지가 배어 있는 말이다.

박 총리서리는 특히 제조업 우선론자다.

그는 11일 당사를 떠나면서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큰 나라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조업을 바탕으로 지식 및 정보산업 육성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 제조업으로 국가경쟁력을 갖춘 뒤 미래산업인 정보통신 및 지식산업
분야에 관심을 돌리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어 "1992년 포철 건설을 완료했을 당시 우리나라에 초고속정보통신망
을 깔기 위해 포스데이타를 만들었고 매년 1조원씩 투자키로 했었다"고
술회하는 등 정보통신 분야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박 총리서리는 이와함께 벤처기업 육성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덕단지를 방문하고 돌아온 자리에서 "세계와의 경쟁을 위해서는
기술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 육성이 시급하고 또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김형배 기자 khb@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