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 ADL컨설팅 한국지사장 >

일본의 간판기업인 소니와 마쓰시타전기를 비교해 보자.

소니의 주가수익률(PER)은 마쓰시타전기보다 대체로 1.5배 높다.

왜 그럴까.

분석가들은 "소니의 투명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자본시장에서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커질수록 투명성 프리미엄은 더욱
커진다.

투명성이 높은 기업은 왜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기업이 투명할수록 경영자는 기업의 본질에 충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새해에도 해외자본이 한국기업에 활발하게 투자할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이 높아진다.

매우 다행한 일이다.

자본의 구성이 다양해지고 특히 서구자본의 비중이 커질수록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일까.

기업은 이해당사자(stakeholder)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게 되고 그 결과
기업가치는 올라간다.

기업이 투명하다는 것은 주주(자본시장) 고객 사원 협력업체 등의 이해
당사자들에게 기업의 현실과 전략방향들에 대해 많이, 그리고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소유구조와 지배구조에 따른 규범을 국제적인 관행에 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양하고도 객관적 의견이 수렴된다.

그래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며 경영진들은 철저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과정은 한국의 전통적 경영관습과는 매우 다르다.

외환위기의 근본원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폐쇄적이며 배타적 경영관행
관점에서 보면 투명한 경영은 매우 거북스런 요구사항이다.

그러나 도산한 기업들의 소유구조가 개방적이었고 이해당사자들에게 투명한
경영을 했었더라면 엄청난 부실경영 가운데 상당 부분은 피할 수 있었으리라.

외환위기 이후 해외자본의 소유비중이 높아지고 경영참여가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것은 기업의 건전성과 경쟁성
관점에서 다행한 일이다.

미국의 불황이 시작되던 1980년대 말 이후의 두드러진 두 가지 특성은
세계적으로 자본이동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점과 경영전략의 범위(scope)가
세계화되었다는 점이다.

자본이동속도는 전자자금결제가 보편화되면서 빨라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활동의 세계화와 연관지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투자대상이 세계화되므로 자본조달에 대한 경쟁이 격화되었고, 세계적
전략이 없이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게 됐다.

기업의 글로벌화가 그만큼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뽑히는 과정을 비교해 보자.

세계적 기업들은 합리적 방법에 따라 최적의 자격을 갖춘 최고경영자를
선임한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고경영자(CEO)는 많은 이해당사자와 감시자(watchdog) 앞에서 주요 의사
결정 과정을 설명하고 설득한다.

상당수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배타적이다.

또 지역 한정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왜 본사가 아직도 한국에 있어야 하며 시장과 고객에 대한 의사결정이 왜
주요시장에서 수천km 떨어진 한국에서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명확히
대답할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경영능력과 경영관행, 그리고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가치창조의
수준을 세계기준으로 판단받지 못하면서 세계적 기업이 되려하는 것은 이율
배반이다.

여기서 우리는 투명성의 문제는 세계화의 문제이며, 기업전략의 핵심사항들
과 연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님이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집안정돈을 잘
하려고 할 것이다.

방문하는 손님들의 의견을 열심히 듣게 되면 전보다 더욱 발전해 나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투명성의 문제는 지엽적이라기보다는 총체적이다.

쉽게 말하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것이다.

봐주고 도움 받고 서로 더불어 살아간다는 명분 아래 그럭저럭 넘어가는
문화와 체제에서 세계 최고는 나올 수 없다.

개천에서 나온 용은 바다에서 나온 용에게 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 벤처기업들만이라도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드는
일에 솔선하고 그들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정화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명성의 문제는 우리 경제의, 나아가서 우리 사회 전체 시스템의 가장
치명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다.

소유와 통제에 대한 집착이 강한 우리 기업주들에게 투명성을 강요하는
것은 반란과도 같은 일일 수 있다.

이리저리 빼돌리는 내부거래를 통해 엉뚱한 회사만 살찌게 하고 수천 수만명
의 주주들이 소유한 상장회사는 허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한
현실 아닌가.

이들에게는 투명성 주장은 독약을 먹으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능력보다는 내 통제하에 둘 수 있다는 이유로 최고 경영자를 고르는 일이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표준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 도전적으로
생각될지 모른다.

사외이사를 임명했다는 흉내를 내기 위해 거수기 하나를 더하려는 풍토가
아직도 있다면 투명성에 대한 논의가 쓸데없는 에너지의 낭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세계적 가치기준이 동일화해 가는 커다란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깨어 있는 소유주들을 시작으로, 의식 있는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우리의 희망인 벤처기업들을 원동력으로 우리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일원
이 되어야 한다.

기업현실과 경영의 내용을 더 많이, 더 상세히,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런 관습을 통해 더 강해지려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야말로 경쟁력 제고의 지름길이다.

< jung.t@adlittle.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