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한아시스템은 품목을 다각화하기 위해 이달초 네트워킹 이더넷
스위치(러슬스위치 3124)를 선보였다.

전송속도 용량 등에서 획기적인 제품으로 평가받는 이 스위치의 핵심 칩을
공급한 회사는 이스라엘의 라드랜사다.

한아시스템은 당초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의 의뢰를 받아 스위치를
개발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칩을 공급키로 한 TI측에서 갑자기 개당 가격을 60달러에서
3백달러로 높였다.

구입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알고 보니 칩 개발에 실패했던 것이다.

이에 한아시스템 직원들은 칩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라드랜사를
잡게 됐다.

하이테크 분야에서 한국과 이스라엘간 기술협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동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그동안 해외 기술유출을 꺼려
왔다.

기술 판매를 법으로 금지할 정도였다.

그러다 최근 한국을 기술.생산협력의 파트너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양국간 하이테크 교류가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로 양측 벤처기업간 제휴 방식이다.

이스라엘 컴터치소프트웨어사는 한국의 퍼시픽네트워크사와 제휴, 한국내
무료 E메일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컴터치사는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

한국 벤처기업인 펜타미디어는 PC용 위성수신카드 분야에서 이스라엘의 한
위성방송 회사와 기술협력키로 했다.

경남정보대학의 경우 텔아비브대 테크니온대 등 이스라엘 대학들과 공동
으로 4백75건의 이스라엘 기술을 한국에 소개했다.

이 가운데 49개 기술을 한국의 38개 중소 및 벤처기업에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 양국 기술협력 왜 활발해지나 =이스라엘의 첨단기술과 한국의 생산능력
사이의 "궁합"이 맞다.

이스라엘은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 연구단지여서 첨단기술이 풍부하다.

지난 1990년대 들어 주로 옛소련으로부터 유입된 70여만명의 유태계 과학
기술자들을 산업요원으로 활용해 이뤄낸 것.

미국 나스닥시장에만도 90여개의 상장기업을 보유한 배경이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의 벤처산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급 기술자들의 유입이 일단락돼 더 이상 정부 주도의 벤처시책만으로는
지속 성장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제조기반의 벤처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국제 무대에 본격 나설
태세다.

한국의 벤처금융 시장이 급격히 커지는 점도 외자유치 노하우가 많은
이스라엘로선 관심거리다.

벤처창업 건수 또한 이스라엘에 비해 훨씬 많다.

그런데 기술 기반은 취약해 상호 협력의 여지가 많은 것이다.

<> 이스라엘의 첨단기술 현황 =정보통신 등 하이테크 분야에서 미국에
견줄 수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밖에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인터넷 회선을 통해 음성 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게 하는 VoIP 분야를
보자.

보칼텍 델타스리컴 오디오코드 등 이스라엘 기업들이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스코 노텔 도이치텔레컴 등 거대 통신기업들이 보칼텍 등과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군사기술 관련 소프트웨어의 암호화 및 보안시스템에서도 이스라엘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기초 기술을 양산해 상용화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기술공학 자연공학 농업 의학 분야의 눈문 발표 건수에서 이스라엘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헤브루대 텔아비브대 등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있기 때문.

와이즈만연구소 부설 기관 등에선 기초과학을 체계적으로 사업화하는 일을
담당한다.

전국의 26개 기술인큐베이터는 상용기술의 보고.

인큐베이터 벤처기업들의 사업분야는 의료기기(35%) 통신(21%) 전자(17%)
전기(5%) 화학(2%) 생명공학(1%)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생명공학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젖과 기술"의 땅으로 변모한 것이다.

<> 이스라엘 벤처육성책의 시사점 =이스라엘은 많은 점에서 한국과 유사
하다.

빈약한 부존자원, 높은 교육열, 적대적 대치상황, 정부주도형 산업육성
정책 등에서 그렇다.

때문에 한국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고급 기술진들의 유인책.

이스라엘이 옛소련 과학기술자들을 벤처기업가로 육성했듯 한국도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기술인력들을 범민족 네트워크 형태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또 부처별로 경쟁적 독자적으로 수행중인 벤처기업 육성책을 효율적으로
통합 정비해 실효성 있는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장기적 안목에서 효율적인 과학기술 인력을 육성하는 시책이
긴요하다.

기술력 없는 벤처기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