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여행업계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 사태 여파가 자칫 성수기인 연말 내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인바운드(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여행) 업계는 각국 정부의 한국 여행 주의보 발령 확산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5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은 자국민에게 한국 여행 시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계엄령은 해제됐지만 정치·사회적 정세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지난 4일 영국 외무부가 "현지 당국 조언을 따르고 정치 시위를 피하라"며 한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한 데 이어 미국 국무부도 "평화 시위도 대립으로 변하고 폭력 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 시위 진행 지역은 피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은 주한미군과 민간인 직원, 가족들에게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주의를 당부했다.싱가포르 우크라이나 일본 이스라엘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도 한국 여행에 대한 주의를 권고하면서 여행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국 여행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 '치안'이 타격을 입은 셈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전인 2019년 대비 회복세를 보이고 있던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도 100%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앞서 정부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를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해왔다. 관련 업계도 방한 외국인 전용 프로모션과 일정 관리 애플리케이션(앱) 출시 등 여행 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해왔다. 올해 1~10월 누적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374만명을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무통)는 와인을 예술로 승격시킨 최초의 와인이다. 무통의 설립자인 바롱 필립 드 로칠드 남작(1902~1988·바롱 필립)은 당대 최고 예술가들에게 와인 라벨 작업을 부탁했고, 1945년부터 매년 다른 작가들이 무통의 와인 라벨을 그렸다. 80년간 쭉 이어온 무통의 전통은 와인 애호가 사이에선 꿈의 컬렉션이다. 2015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선 무통의 1945~2012년 빈티지 컬렉션(66병)이 37만6900달러(약 5억3000만원)에 팔렸다.미감을 자극하는 보틀은 강력한 매력이지만, 기본은 프랑스 보르도 1등급 와인의 검증된 맛이다. 카베르네 소비뇽(79%), 멜롯(17%), 카베르네 프랑크(3%), 프티 베르도(1%)의 섬세한 배합으로 부드러운 목 넘김과 풍부한 보디감, 입안에 오랫동안 퍼지는 잔향까지, 세계 최고의 와인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1년 중 가장 특별한 날, 올해의 와인 라벨 공개무통의 2022년 빈티지 와인 라벨 공개가 있는 날. 11월 30일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무통의 와이너리에서는 1년 중 가장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과연 올해의 아티스트는 누구일까? 다양한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행사 직전까지 스포일러는 없었다.공개 시간은 오후 7시. 무통 측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스러운 준비로 분주했다. 10분 전에 행사장에 들어섰다. 2022년 빈티지 와인과 올해의 작품이 나란히 붉은색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곧 올해의 아티스트와 2022 빈티지 라벨이 최초로 공개됐다.무통의 공동 소유주이자 예술 및 문화 활동을 담당하는 줄리앙 드 보마르셰 드 로칠드는 “우리에겐 라벨 공개 행사가 매우 특별한데, 올해는 더 특별하다. 바롱 필립 드 로칠
세상이 혼란할 때, 예술을 생각한다. 세기를 건너 위대한 명작이 된 예술 작품은 상당수가 혼돈 속에서 피어났다.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그려낸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가 그랬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도 스탈린 정권의 억압 아래 탄생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실내악 작품, 일부 교향곡 역시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뇌에서 비롯한 예술적 산물이다. 나치의 탄압에 움츠러들었지만 ‘사람들을 다시 꿈꾸게 하기 위해’ 창작에 몰입한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코코 샤넬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영화, 문학, 건축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대는 늘 과거를 딛고 일어났다.어떤 예술가에게 창작은 곧 생존이다. 사람들을 다시 꿈꾸게 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 그렇게 동시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아름다운 목소리들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여기 1900년대 오스트리아 빈의 이야기가 있다. 진부하고 보수적이던 도시의 문화를 예술로 타파하고자 한 예술가들이다. ‘황금의 화가’로 잘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는 시대의 지성이자 사상가였다. 예술가들의 구심점으로 과거와 우리를 분리시키자는 ‘빈 분리파’를 만들어 사람들을 깨웠다. “예술의 자유를 되찾자”는 구호는 모든 혁신과 도전이 그렇듯 당대에는 반발과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음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거대한 뿌리가 됐다. 빈 분리파는 음악, 미술, 공예, 디자인, 문학과 연극 등 존재하는 모든 예술을 하나로 통합했고 현대 디자인과 건축, 공예와 예술의 씨앗이자 거름이 됐다.1900년대 빈의 예술가들은 함께했다. 끈끈하게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