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루를 사용한 김치가 등장한 건 임진왜란 이후고, 궁중요리인 구절판과
신선로도 청나라에서 들어온 것이다.
재즈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전반에 영역 파괴내지 통합 바람이 불더니
음식에도 퓨전 열풍이 거세다.
퓨전요리(Fusion Food)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나라나 문화권의 음식을
융합한 것을 말한다.
참기름장 끼얹은 샐러드에 된장에 버무린 닭고기, 만두에 크림김치소스를
곁들인 치즈와 대추, 초밥과 샐러드 베트남국수 세트, 치즈비빔밥 등이다.
라이스버거 피자군만두 떡볶이피자 퓨전치킨스파게티도 일종의 퓨전음식인
셈이다.
80년대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야채를 마요네즈대신 간장과
참기름으로 버무려 내놓은뒤 확산됐다.
국내엔 97년 서울 강남에서 선보인 이후 지난해 가을부터 유행, 근래엔
인사동 한정식집이 퓨전식당으로 간판을 바꿔달 정도다.
퓨전음식이 늘어나는 건 사람들이 정통양식보다 우리 입맛에 맞는 소스를
곁들인 색다른 스타일을 좋아하는 탓이라 한다.
한끼에 양식과 한.중.일식을 고루 맛보려는 취향에 맞춘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퓨전레스토랑 음식이 기존양식보다 맛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붐때분에 정갈하고 감칠맛 나는 한식은 사라지고 국적불명
음식만 늘어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실리콘밸리에서 인기라며 곳곳에서 취급하는 베트남국수만 해도 익히지 않은
숙주나물 등을 넣어 먹기 힘들다는 것이다.
을지면옥 냉면과 하동관 곰탕, 한일관 갈비탕을 찾는 이들에게 "뻐꾸기둥지
위로 날아간 새(탕수육) "공자가 돼지 몰러 나간 이유는"(불고기소스덮밥)"
"제주해녀 캘리포니아 여행기"(미역두부샐러드&오렌지 된장드레싱)는 낯설다.
이름만으론 뭔지 모르니 먹어본 사람이 메뉴번호를 외워 3 5 7 8식으로
시킨다는 주문패턴도 씁쓸하다.
식생활은 배만 채우면 되는데서 점차 맛, 보기, 향에 관심을 뒀다가
건강과 미용을 생각하고 신토불이에 관심을 갖는 단계로 바뀐다고 한다.
기왕이면 우리음식의 맛과 멋을 살려 세계에 잡종강세의 위력을 보일 한국발
퓨전요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