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없는 금감위가 더 겁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14일 아침 개각소식을 전한 한국경제신문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 임원은 "이헌재 위원장은 무섭긴 했지만 원칙에 맞지 않은
일을 강요하지 않았고 크게 보면 꼭 해야 할 일은 했는데 그런 사람이
나갔으니 이제 옛날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 아니냐"고 답했다.

1.13개각후 금감위 금감원 안팎에선 금감위의 위원장 부위원장이 모두 잘
됐으니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 빼고는 이 임원의 말처럼 걱정하는 얘기가
많았다.

"이제 다시 재경부를 주인으로 모셔야 할 때가 왔다", "금감위를 만만하게
보는 세력들이 기승을 부릴거야", "특정지역 출신이 다 해먹을거다"...

이 재경장관도 걱정이 됐던지 지난 13일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외압과 간섭으로부터 금융시장을 지켜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감위 금감원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여러 장치를 만들어놨다"고
걱정을 스스로 덜어보려 하기도 했다.

14일 이임식 때는 김구 선생이 결단을 내릴 때 자주 인용했다는 서산대사의
싯귀를 읊으며 당부를 잊지 않았다.

"답설야중거(눈덮인 광야를 걸어갈 때는) 불수호란행(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수작후인정(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이같은 전임 수장의 당부에 이용근 신임금감위원장은 "폭탄주 마시는 것만
빼고는 이헌재 위원장 것을 모두 받겠다"고 화답했다.

그렇지만 금감위 금감원이 전임위원장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어 스스로 그런
제도와 장치를 굴릴 것인가.

의구심도 없지 않다.

예컨대 이 전위원장이 전문가를 외부에서 과감히 충원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실제론 미흡했고 앞으로는 그런 말도 꺼내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수장이 깃발을 들고 강행군을 시작하자 쫓겨나지 않기위해 마지못해 몸을
움직인 일부 직원들은 정치권 요구를 들어주며 "철밥통"과 맞바꾸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새 위원장의 어깨가 무겁다.

이미 다가온 선거철은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은행퇴출저지 로비" "옷로비"등 온갖 회유에 굴하지 않던 모습을 당당히
지킬 것인지, 아니면 그 옛날의 정치권 시녀로 돌아갈 것인지 판명날 날이
멀지 않다.

시장은 금감위 금감원을 지켜보고 있다.

< 허귀식 경제부 기자 windo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