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공채는 휴지조각인가"

자동차를 사면 강제로 구입해야 하는 "지하철 공채"가 관청의 횡포로
사실상 세금으로 변질되고 있다.

헐값에라도 곧바로 할인받지 않고 장기간 가지고 있다가는 원금과 이자를
떼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16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이 채권의 만기가 지나고도
원금과 이자를 찾아가지 않은 돈이 69억7천만원에 달한다.

이중 원금은 18억3천만원, 이자는 51억4천만원이다.

이는 원금은 5년, 이자는 2년이 지나면 찾을 수 없게 돼 있는 도시철도법
(12조4항)의 소멸시효 규정 때문이다.

제때에 상환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에 돈을 떼이게 돼
있다는 얘기다.

국가나 서울시가 지하철 공채 보유자에게 상환일정 등을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는 어느 곳에도 없다.

서울 성동구 성수2가동에 사는 김주필(58)씨는 지난 1990년 3월 그랜저
승용차를 구입하면서 2백90만원 어치의 지하철 공채를 매입했다.

당시 채권의 조건은 연 6% 이자에 5년거치 5년분할 상환이었다.

김씨는 최근 집안을 정리하다 장롱 속에 있던 채권을 발견하고 은행을
찾았다.

아직 기간이 남아 있어 제법 큰돈이 돼 있을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갔다.

하지만 원금만 제대로 받았을 뿐 이자는 10만4천원밖에 받지 못했다.

원금은 줄 수 있지만 이자는 2년이 지나면 주지않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아직 원금상환 기간이 남아 있는데 이자를 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1995년 3월(1회차)~97년 3월(3회차)에 받아야 할 원금의 이자를
떼이고 말았다.

4회차(98년 3월)의 원금잔액(1백16만원)과 5회차(99년 3월) 원금(58만원)에
대한 이자 6%에 해당하는 10만4천원만 받은 것이다.

지난 1990년 11월 쏘나타 승용차를 구입했던 서강희(41)씨도 지하철
공채에 분통을 터뜨린 케이스다.

서씨는 당시 1백19만5천원 어치의 지하철 공채를 샀다.

최근 상환받으러 은행에 갔지만 이자 4만3천원을 받고는 할 말을 잃었다.

서씨는 "한마디로 국가의 횡포"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아예 노골적으로 돈을 떼먹겠다는 의도로 만든 규정이라고 주장했다.

건설교통부도 이런 민원을 감안,도시철도법을 개정해 지하철 공채의 조건을
연리 6%에 7년 일시분할 상환으로 바꿨다.

그러나 법을 개정하기 전에 지하철 공채를 구입한 시민들은 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여전히 소멸시효 규정이 유효해 선의의 피해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일부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돼 법을 고쳐야 한다고
건교부 등에 요청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철도법에는 배기량 1천~1천5백 의 차량은 등록세과세표준액(차값)의
9%, 1천5백~2천cc는 12%, 2천cc이상은 20%에 해당하는 지하철 공채를 강제로
사게 돼 있다.

지난 1978년부터 차량 구입에 얹어서 팔아온 지하철 공채는 4조7천만원
어치가 발행됐다.

이 돈은 "도시철도 건설사업에 관한 특별회계"에 묶여 지하철건설 재원
등으로 사용된다.

< 남궁덕 기자 nkduk@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