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7월17일 경총 창립총회가 타워호텔에서 열린다.

창립총회 이틀전 명칭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7월15일 준비위원회에서 경총 명칭 최종안으로 "사용자협회"를 제안했다.

"경영자"대신 "사용자"로 한 것은 노사관계 등에서 사용자가 관용어로
쓰인데 따른 것이다.

또 영어명칭이 될 "Employers'' Association"을 직역하면 사용자협회가 된다.

그러나 "사용자"라는 말이 대립적 뉘앙스를 풍긴다는 이견이나왔다.

결국 전문경영인 시대가 올 것을 감안, "경영자협회"로 의견이 모아졌다.

창립총회에서의 "결의문"과 초대 회장 선출이 관심을 끌었다.

이 결의문을 20년이 지난 요즘 봐도 노사관계의 이상.비전을 이 이상
간결하게 서술할성 싶지 않은 명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의문 작성에는 훗날 경총 사무국장, 상근부회장을 역임한 윤능선(당시
전경련 사무차장), 황정현씨 등이 참가했다.

며칠을 두고 필자와 용어 하나, 토씨 하나까지 신경 쓴 기억이 바로 어제
같다.

"생산적 노사관계를 촉진할 기본자세로서 <>공동목표 의식(기업 발전과
근로자 복지 증진이 노사의 공동 목표임을 천명하고 노사이해가 본질적으로
상충한다는 의식을 불식해야 한다) <>생산성 제고의 조성(창의와 기술혁신에
토대를 둔 근로환경의 개선, 경영의 합리화, 생산교육및 직업훈련 등을 적극
실천한다) <>생산성 배분의 원칙(합리적 임금제도, 확대재생산을 위한 투자,
소비자에의 복리증진 등 보다 과학적인 성과배분을 지향한다) <>이해증진을
위한 대화(노사간 대화의 폭을 넓혀 산업평화를 이룩한다)"

필자는 요즘 결의문을 읽을 때마다 상념에 사로 잡힌다.

비전과 이상이 실현되기는 커녕 오늘날의 노사관계는 20년전보다 크게
후퇴한 느낌마저 든다.

노사관계에 정치까지 개입하게 됐으니, 풀기가 더욱 힘들게 되어간다.

암담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서울지하철 배일도 노조위원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접하고 희망을 찾았다.

"서울지하철 무쟁의 선언"(2000년 1월5일 조간).

배 위원장은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노조활동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무쟁의 선언 배경을 설명했다.

한데 이 선언 뒤엔 노사간 큰 흥정이 있었다는 풍설이 나돈다.

다만 필자는 이를 계기로 노사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작고한 황정현 경총 부회장(1994년)이 필자에게 남긴 말이 떠오른다.

"지난봄 노조 지도자들과 경영자들이 함께 유럽 노조운동 실태를 보러
갔습니다. 독일 노조총본부에 갔을때 브리핑한 내용이 독일 경영자총연합회
에서 받은 것과 비슷한데 놀랐습니다. 독일경제 실태, 전망, 생산성 향상,
문제점을 설명하고 임금인상 범위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사 양측의
임금인상 주장 폭이 불과 1~2% 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진화된 노사관계,임금 교섭의 기본 자세일 것이다.

다시 경총 창립총회 얘기다.

경총 초대 회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 준비위원회 공동 대표로 김용주(전 경방 회장), 주요한
(해운공사 사장) 두분을 추대했다.

두분을 추대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김용주 회장은 벌써부터 김용완 회장의 뒤를 이을 분으로 물망에 올랐다.

오늘이라도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사퇴할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필자와 윤태엽씨는 이런 때 언론 문화 경제계를 두루 걸친 주요한 선생이
경총을 이끌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용주 회장은 노사관계의 중요성과 경총의 역할을 잘 이해하시고 그 후
10년간 회장직에 계시면서 오늘날 경총의 기틀을 마련했다.

사무국은 전경련에서 전출한 유능선.황정현씨가 연이어 상근부회장을
맡았다.

특히 코오롱 이동찬 회장은 김용주 회장에 이어 10년 이상 경총을 이끌며
사무국과 함께 경총을 오늘날 세계적 기구로 발전시켰다.

< 전 전경련 상임 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