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에 천원짜리 생수 몇병씩을 가지고 사막여행을 떠났다.

버스에 탄 여행객들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사막 짐승도 보고 오아시스도
구경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점점 심해져 버스는 멈췄고 마침내 반쯤 모래에 묻혀 버렸다.

가이드가 무전으로 도움을 청했지만 구조대도 접근이 불가능했다.

밤이 되고 차가 꼭대기까지 모래로 덮이는 순간, 정적을 깨고 누군가 말문을
연다.

"생수 한 병을 5천원에 팔 사람 있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다급한 음성들이 줄을 잇는다.

"난 2만원씩 줄테니까 세 병만 삽시다" "나는 10만원" "여긴 오십만원".

엄습하는 불안과 횡재의 환호가 교차되면서 차 안은 잠시 아수라장이 된다.

본부와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바람도 곧 그칠 것 같다는 가이드의
방송에 가격은 이내 만원으로 떨어진다.

차가 완전히 묻히고 이제 구조대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무전이 끊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해 하는 가이드를 보는 순간 누군가 소리친다.

"생수 백만원!"

눈 깜짝할 사이에 최고치가 경신되고, 삶을 위한 몸부림은 마침내 1l 짜리
생수 한병을 천만원까지 올려놓는다.

무전기에서 치직치직 잡음만 들려도 십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가 소리가
죽으면 또다시 5백만원, 천만원..

생수의 본질가치가 변하는 게 아니다.

몇 모금 목을 축여줄 정도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

생수를 향한 사람들의 심리가 변할 따름이다.

죽음의 공포와 구원의 환희가 널뛰기를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주식시장도 똑같다.

어제나 오늘이나 회사는 멀쩡히 그대로 있는데 그 회사 주가만 난리다.

24만원하던 주식이 73만원까지 치솟더니 한달만에 5만원대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13만원한다.

오늘 지나면 영영 이 가격을 못본다고 호들갑을 떨며 샀다가 하룻밤 자고
나면 금세 겁에 질려 내다 던지기도 한다.

FOMC(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장에 들어서는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서류가방 두께를 점쳐보며 전세계 수억 투자자의
두뇌가 초고속 회전을 한다.

현행 금리유지든 25 bp 인상이든 기업에, 경제에 대차는 없다.

사람들 심리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두고 법석을 떨며 머리를 굴리고
주가를 들쑤시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분석가나 경제학 박사보다 심리학자가 주식을 더 잘할 수밖에
없다.

이젠 우리 투자자들도 다른 각도에서 시장을 바라볼 때가 됐다.

적정주가 대비 저평가됐단 말에 무턱대고 주식을 사는 순진함은 이쯤에서
버리자.

주가는 주가산정 공식보다는 집단심리에 더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내재가치에 투자한다며 사서 마냥 묻어두는 일도 이제는 끝이다.

기업가치의 최종 심판자는 재무제표나 수익성, 성정성이 아니라 바로 7백만
시장참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망한 회사의 가치가 제로라는 것 말고는 현재 돌아가고 있는
기업가치에 대한 견해는 저마다 다르다.

누굴 믿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시장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함부로 과열을 논해서도 안된다.

주식을 향한 투자자들의 사랑은 아무도 나무랄 수 없는 것이고, 또한
그 열정이 언제 식을지는 그들 자신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가에 투매가 나온다고 비웃다간 큰코 다친다.

좌절과 공포감에서 헤어날 때까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내다 던질지 감히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번씩 상식으로 설명이 안될 정도로 많이 오를 때 큰 돈이 되고,
말도 안되게 많이 내린다 싶을 때 치명적으로 당할 수 있는 게 주식이다.

대개 전자의 경우에는 물끄러미 구경만 하다가 후자에는 어김없이 참석해서
톨톨 다 털린다.

바로 과열, 과냉, 상투, 바닥 운운하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는 생수 한병을 천만원 주고 사먹는다.

지방백화점 우선주가 10개월만에 3천배 오르기도 했다.

주가는 두려움과 희망과 탐욕의 결정체다.

< 현대증권 투자클리닉센터 원장 / 한경머니 자문위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