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을 왜 해야 하는가"

한국전통음악 연구에 일생을 바친 장사훈 선생에게 생전에 이렇게 묻는
학생은 혼쭐이 나곤 했다.

"영어나 서양사를 왜 해야 하는가"라는 말은 통할 수 있어도 "국어나 국사를
왜 해야 하는가"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양악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국악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표현은 잘못됐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새삼스레 "국악교육"에만 그 이유를 돌릴 생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서양
음악만 배우고 듣고 자라온 것이 우리들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에는 아직 국악을 고리타분한 전통문화나 잔칫상에
곁들이는 권주가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악이 그만큼 홀대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국악홀대는 요즘 대중의 총아인 TV의 편성표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KBS는 주당 기본방송시간 6천3백35분중 0.9% 정도를 국악에 할당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 "국악한마당"(60분)이 방송된다.

SBS는 주5일 매일 5분씩 방송되는 "정겨운 우리가락", EBS는 토요일 "어린이
국악교실"(20분)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MBC TV의 경우 국악 고정프로는 없다.

라디오의 경우도 TV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와중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정통 국악은 들어보지도 못한 채 서양의
랩 등 충동적 리듬에 휩쓸려 가고 있다.

국악의 중요성을 뒤늦게나마 인식한 정부가 금년부터 초.중등 음악교과서의
국악비중을 40%로 늘리기로 하고 2001년 국악FM방송국을 개국키로 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 국립국악원이 주파수까지 배정받아 추진해 오던 국악FM방송이
정부로부터 20여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난항에 빠져 있다는 소식이다.

민간기금에서라도 예산을 끌어다 약속대로 개국하겠다지만 실현여부는
미지수다.

국민정서를 순화시켜주는 것이 음악이라고 한다.

하향평준화돼가는 서양 대중음악의 획일화를 막고 우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국악FM방송이 미뤄져서는 안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