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미국의 신발회사인 리복이 새 천년을 맞으면서 새기고 있는 화두다.

2000년대에는 기필코 세계 1위 자리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현재 리복의 세계 신발업계 랭킹은 3위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12%다.

1위 회사인 나이키(33%)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위 업체인 독일 아디다스(16%)에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

리복에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기였다.

캐주얼화와 에어로빅용 운동화 등이 연달아 히트를 쳤던 때다.

당시 리복의 기세는 무서웠다.

신발업계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했던 나이키마저 제쳤다.

당당히 신발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나이키를 비롯한 경쟁업체들 사이에 리복 공포증이 생길 정도였다.

리복의 탄탄한 기술력이 빛을 발했다.

리복은 아무 것도 거칠게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영예의 1위에 오른 시기는 잠시 뿐이었다.

이후 10여년 동안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 길이 시작됐다.

짧은 비상, 긴 추락의 영욕을 맛봐야 했다.

90년대 들어 내놓은 주력 제품들이 대부분 실패작으로 귀결된 탓이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내놓은 고기능성 운동화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1992년 여성을 겨냥한 신발을 집중 출시하면서 반전을 꾀했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했다.

패션 감각이 돋보인 경쟁사 제품에 치였다.

와신상담 끝에 97년 신기술 운동화를 선보였지만 또 다시 쓴 잔을 마셨다.

디자인이 밋밋했던 데다 마케팅 노력마저 부실했기 때문이다.

헛손질을 거듭하는 동안 리복의 영업 실적은 끝없이 추락했다.

작년의 경우 이익이 전해에 비해 82%나 급락했다.

97년중 1억3천5백10만달러였던 것이 98년에는 2천3백90만달러에 그쳤다.

매출도 내리막 길을 치닫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32억달러에 그쳐 전년에 비해 11.5% 줄어든 규모다.

이익 마진은 더 한심하다.

0.7%로 한해 전에 비해 80%나 줄었다.

실적이 급전직하함에 따라 증시에서도 "왕따" 당하는 신세가 됐다.

리복의 주가는 지난 3년새 80%나 떨어졌다.

어디를 쳐다봐도 사면초가 뿐인 상황이다.

마침내 리복은 재도약을 향한 승부수를 던졌다.

그 첫번째 수순으로 군살부터 뺐다.

지난해 9월 매사추세츠주 스터프턴 본사의 임직원 1백20명을 정리했다.

이어 전세계에서 5백명을 추가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전체 임직원의 10%를 감원하는 셈이다.

고액 광고 모델들과의 계약도 대부분 해지했다.

이중에는 프로 농구 스타인 샤킬 오닐도 포함됐다.

효용이 확실치 않은 비용은 지출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에서다.

이렇게 해서 절감된 비용을 새로운 전략 프로젝트에 집중 투입키로 했다.

전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소년층을 겨냥한 고기능성 운동화 트랙스타
(Traxtar)를 출시했다.

이 신발은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내장돼 있어 여러 가지 부대 기능을 발휘
한다.

예컨대 달리기 속도와 높이뛰기 기록 등을 측정해서 알려준다.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미국내 신발시장의 42%를 차지하고 있는 청소년 고객들을 상대로 승부를
걸었다.

리복은 트랙스타의 마케팅 비용으로만 내년중 6백만달러를 쓰기로 했다.

올해 청소년 마케팅으로 지출한 비용의 3배가 넘는 규모다.

트랙스타는 리복이 승부를 걸기로 한 스마트 신발의 신호탄이다.

후속 제품으로 보행(주행)거리와 속도가 동시에 표시되는 첨단 운동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새 농구화와 여성 에어로빅용 신 고기능 운동화도 내놓기로 했다.

기술의 리복이라는 옛 명성을 살려 권토중래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홍보 캠페인도 강화키로 했다.

내년중 활자매체 및 빌보드 광고 만으로 1천5백만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평소 기업 이미지 광고에 연간 1백만달러 이상을 쓰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파격이다.

판매 전략도 바꿨다.

종전에는 주로 시어즈 로벅과 J C 페니 등 할인 양판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했다.

박리다매를 겨냥해서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싸구려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는 부작용을 냈다.

이에 따라 풋라커 등 전문 매점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

리복의 이런 승부수가 어떤 결실로 이어질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에서 운동화 산업은 아직도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이다.

사양산업이라는 소리를 들은지 오래인데도 연간 시장 규모가 1백38억달러나
된다.

실패를 거름삼아 성공을 수확하겠다는 리복의 야심이 이뤄질지 두고 볼
일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