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서, 미국 PC 소매시장 철수 ]

1999년 2월, 세계 제5위의 PC제조회사인 대만의 에이서 컴퓨터(Acer
Computers)는 더 이상 미국내에서 소매상을 통해 PC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대신 에이서의 미국내 PC사업은 정부기관 및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판매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며 인터넷을 통한 PC판매에도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전략의 변경으로 말미암아 에이서의 미국 자회사인 에이서 아메리카
(Acer America Corp)의 직원수는 약 10% 정도, 즉 50명 가량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연간 생산대수 8백만대를 자랑하는 이 회사 PC사업의 핵심이자 약
절반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위탁생산(contract-manufacturing) 부문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에이서가 이런 고통스런 조치를 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는 미국내 PC사업의 적자를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에이서는 1998년 한햇동안 미국에서 약 5천만달러의 적자를 냈으며 이것이
한 원인이 돼 이 회사의 총이익은 33%나 뚝 떨어져 7천6백만달러가 됐다.

또한 1996년 이후 미국에서의 에이서 누적적자는 약 2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 회사가 미국에서 이렇게 고전하고 결국 소매부문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미국의 PC산업이 몇몇 대기업이 지배하는 전형적인 과점체제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9월말 현재 미국의 5대 PC회사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55%였으며
이 수치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1천달러 미만의 PC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경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즉 옛날에는 미국의 대기업들이 저가의 틈새시장은 아시아 회사들에
양보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막대한 마케팅 예산을 써가면서 이러한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대기업들이 자기 나라에서 저가 PC시장을 겨냥해 대대적인
공세로 나오자 에이서 등 외국 회사는 그들과 맞서 싸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이서가 미국의 PC소매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한 것은 합리적
인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에이서"를 대만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상표로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이 회사로서는 이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매우 가슴 아픈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에이서는 또한 앞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을 키우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려고
한다.

만일 계획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된다면 이 회사는 2010년께에는 총이익의
30%를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올리게 돼 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사업은 그 성격상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회사와는 전혀
다른 기업문화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PC생산에만 익숙한 경영자들은 이 사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사업에 맞는 참신한 경영자들을 영입하고 창의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에이서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 이
사업을 추진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유필화 <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