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이 됐지만 한동안 우리 국민들은 어느 중견 여자
탤런트의 공주병에 울고 웃던 때가 있었다.

일단 자기주제를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고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만 좇는
것이 공주를 보면서 희망을 갖게 하기보다는 저 꿈이 깨지면 또 어떻게 되나
하는 두려움만 앞서게 했다.

요즘 우리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공주병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선 정책당국이 경제현실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이상만 좇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보고 싶다.

연초 들어 우리 경제는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그동안 유리하게 작용했던 국제유가와 금리 원화 가치가 동시에 "신3고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무역수지도 이대로 가다간 이달에는 IMF사태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를 운영하는 것도 그렇다.

연초에 들어서자마자 현 정부 출범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원리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시장원리를 존중한다는 것이 좋은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문제는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뭔가 잘못된 것 같고 현실을 무시한 이상만
좇는 것은 아닌지 쓴웃음을 짓게 하는데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이같은 현상은 그동안 현 정부가 경제난국을 풀어가는
모습에서 툭하면 시장원리를 운운하다 정작 시장에 맡겨 놓아야 할 때에는
사사건건 개입해 관련 경제주체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총선을 3개월 정도 앞둔 현 시점에서 정책당국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옷로비다 뭐다 해서 상황이 안좋은데 경기마저 불리하게
돌아간다면 무엇을 갖고 총선을 치를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기간내에 뭔가 드러내려면 치부는 가려야 하고 마음은
조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당한 것을 한낱 공주병의 추억으로 간직해 두기에는
국민들이 입은 상처가 너무나 크다.

국민들에게 경제실상을 솔직히 알리고 이해를 구할 것은 구해 나가야 한다.

현 시점에서 경제운영은 시장여건에 순응해 풀어나가는 것이 고와 보이는
때다.

그래야 공주가 실제로 왕비가 되어 한 세대를 풍미하듯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고 국민들도 풍요로운 생활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한상춘 전문위원 sch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