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말스크린) '바이센테니얼 맨' .. SF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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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이 29일
개봉된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기술문명이 극에 달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SF
코미디 영화다.
공상과학소설의 대부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동명의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주인공이 이색적이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한 가사로봇이다.
전기를 충전시키고 부품만 제때 갈아 끼우면 영생할 수 있는 기술문명의
집합체다.
그런데 이 로봇이 좀 이상하다.
한번은 자유를 꿈꾸더니 급기야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며 기를 쓰고
매달린다.
왜 그럴까.
그것은 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전제품"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체의 하나로 껴안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쫓는다.
무려 2백년간 끊임없이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진짜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로봇의 여정을 조용히 펼친다.
2005년 미국 뉴저지.
리처드(샘 닐)는 가족을 위해 희한한 선물을 구입한다.
집안의 온갖 잡일을 훌륭히 해낼수 있는 전기충전식 가사로봇 앤드류(로빈
윌리엄스)다.
"로봇은 무위로 인해서라도 인간에 해를 끼칠 수 없다. 이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을 따른다. 또 이 두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앤드류는 짜여진 원칙에 따라 가사로봇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그런데 앤드류에게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발생한다.
예술가 못지 않은 창의력을 발휘하고 사랑 슬픔 등 인간의 감정에도 젖는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건방진" 불량품이다.
분해해서 수리를 해야할 판이다.
앤드류는 그러나 리처드의 보살핌 아래 자신의 재능과 감정을 발전시킨다.
자유를 얻어 자신과 같은 로봇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기술문명이 발달한 미래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측면을 다룬 대부분의
공상과학영화와는 달리 차분하고 긍정적이다.
카메라 역시 단란한 가정과 시원한 자연풍광에 더 많은 시선을 던진다.
로빈 윌리엄스 특유의 따뜻한 유머는 영화의 흐름을 한층 푸근하게 만든다.
어른들을 위한 성적 농담에도 재기가 빛난다.
그 이면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의사소통과 그 범주에 대한 자못 심각한
물음이 담겨 있다.
신과 같은 창조자로서의 지적, 기술적 진화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세계"와의 관계설정을 위한 질문이다.
영화는 인간을 닮은 로봇을 인간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성적결합 가능성과 죽음(생물적 유한성)을 그 핵심조건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미래의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영화의 이야기대로 착한 인간으로
살기를 꿈꿀지 아니면 인간에 등을 돌리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홀로 집에 1,2" "스텝맘"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으로 유명한 흥행마술사
크리스 콜럼버스가 감독했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
개봉된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기술문명이 극에 달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SF
코미디 영화다.
공상과학소설의 대부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동명의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주인공이 이색적이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한 가사로봇이다.
전기를 충전시키고 부품만 제때 갈아 끼우면 영생할 수 있는 기술문명의
집합체다.
그런데 이 로봇이 좀 이상하다.
한번은 자유를 꿈꾸더니 급기야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며 기를 쓰고
매달린다.
왜 그럴까.
그것은 또 가당키나 한 일일까.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전제품"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체의 하나로 껴안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쫓는다.
무려 2백년간 끊임없이 스스로를 진화시키며 진짜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로봇의 여정을 조용히 펼친다.
2005년 미국 뉴저지.
리처드(샘 닐)는 가족을 위해 희한한 선물을 구입한다.
집안의 온갖 잡일을 훌륭히 해낼수 있는 전기충전식 가사로봇 앤드류(로빈
윌리엄스)다.
"로봇은 무위로 인해서라도 인간에 해를 끼칠 수 없다. 이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을 따른다. 또 이 두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앤드류는 짜여진 원칙에 따라 가사로봇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그런데 앤드류에게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발생한다.
예술가 못지 않은 창의력을 발휘하고 사랑 슬픔 등 인간의 감정에도 젖는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건방진" 불량품이다.
분해해서 수리를 해야할 판이다.
앤드류는 그러나 리처드의 보살핌 아래 자신의 재능과 감정을 발전시킨다.
자유를 얻어 자신과 같은 로봇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기술문명이 발달한 미래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측면을 다룬 대부분의
공상과학영화와는 달리 차분하고 긍정적이다.
카메라 역시 단란한 가정과 시원한 자연풍광에 더 많은 시선을 던진다.
로빈 윌리엄스 특유의 따뜻한 유머는 영화의 흐름을 한층 푸근하게 만든다.
어른들을 위한 성적 농담에도 재기가 빛난다.
그 이면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의사소통과 그 범주에 대한 자못 심각한
물음이 담겨 있다.
신과 같은 창조자로서의 지적, 기술적 진화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세계"와의 관계설정을 위한 질문이다.
영화는 인간을 닮은 로봇을 인간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성적결합 가능성과 죽음(생물적 유한성)을 그 핵심조건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미래의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영화의 이야기대로 착한 인간으로
살기를 꿈꿀지 아니면 인간에 등을 돌리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홀로 집에 1,2" "스텝맘"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으로 유명한 흥행마술사
크리스 콜럼버스가 감독했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