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 작가 >

일단 접하면 헤어나지 못하는 것.

골프의 이런 중독성이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한 분을 보았다.

정년퇴임을 한 교수님인데 강아지 사진을 보며 잠자리에 드시고, 건강
때문에 자제하라는 도너츠를 사모님 몰래 사드시는, 마치 소년처럼 맑은
분이다.

건축을 연구한 분이지만, 건축보다 더 사랑한 평생의 연인이 있었으니 바로
"미술"이다.

미술서적을 보며 좋은 그림을 스크랩하시고, 용돈을 모아 벼르고 별러
그림을 사시고, 거실에 걸어둔 그 그림이 너무 좋아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분.

그분도 한때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한 2년 정도 지났을까?더 이상 골프를 치지 않게 되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골프에 빠지지 않고 그만 둘수 있었어요?"라고 묻자, "골프장
가서도 한 3, 4번홀 정도만 지나면 이런 생각이 드는거야." 겨우 이것밖에
못쳤네. 언제 18홀을 다 돌고 집에 가나. 빨리 집에 가서 그림그리고
싶은데...,"

그래서 볼도 치는둥 마는둥 하게 되었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비록 나는 골프를 그만두었지만 골프는 사람 마음을 참 맑게 해주는
운동이야. 골퍼들은 오로지 볼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하잖아. 내가 골프장 가서도 그림 생각만 하는 것처럼. 다른 어떤 잡념도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예술하는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지"

또 "마음의 평화"를 지상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그분이 덧붙이기를
"영분아, 나는 골프가 맘에 드는 점이 한가지 더 있는데 그건 상대방을
"죽이지 않는 운동"이라는 점이야.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때리거나
볼을 못 집어넣게 막거나 하지 않잖아"라고 하셨다.

상대방이 잘하면 잘하는 대로 또 나는 나대로 즐기며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는 운동.

비록 골프를 치지 않는 분이지만 누구보다 더 깊게 골프의 덕목을 설명해
주실수 있는 것은 그분의 삶이 그만큼 맑고 평화롭기 때문이리라.

사람 마음을 맑고 평화롭게 만드는 운동인 골프를 택한 것은 백번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이렇게 근사한 운동이라면 나는 평생 헤어나지 못해도 좋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