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모티브가된 길과 노을..신경림 에세이 '바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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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경림(65)씨가 자전 에세이집 "바람의 풍경"(문이당)을 출간했다.
신씨가 산문집을 내기는 처음이다.
"바람의 풍경"에는 그의 문학적 모티프와 삶의 뿌리가 오롯이 드러나 있다.
신경림 문학의 토대가 된 "길"과 "노을"의 이미지가 밀도있게 그려져 있다.
바람 많은 현대사의 언덕을 묵묵히 오르면서 그가 지나온 길과 세상의
풍경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자리.
그의 시에서도 자주 확인되지만 그는 스스로 "길"속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미당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길"이었다.
이번 산문집은 "문득 고향생각이 나서 무작정 찾아갔다가 해를 등지고 옛
언덕길을 거꾸로 걸으며 잊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 연유로 탄생했다.
"길이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기도 한다는 평범한 사실에 생각이 미친 것도 그때였다. 이로부터 나는
일부러 안으로 났다고 여겨지는 길을 찾아 걸었다. 잊었던 마을과 마주치기도
했으며 사라졌다고 여겨지던 감정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의 길 이야기는 할머니의 틀국숫집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된다.
그 장터는 영남에서 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단골손님 중에는 소장수가 많았다.
삼촌에게 소들이 서울로 간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크면 소장수가 되겠다"고
했다가 야단도 맞았지만 그는 그때부터 길과 소장수와 바깥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책을 구하기 위해 새우젓장수를 따라 용당장까지 이십리를 걷던 일,
탄금대 나루에서 서울로 가는 뗏목을 보며 장시 "남한강"의 행간을 매만지던
것도 길과 맞닿은 풍경들이다.
"생각해보면 내게는 길만이 길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바깥 세상을 내다볼 수 있었고 또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그 길은 아름답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 그 길을 타고,
사람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첫장에 나오는 "노을"도 중요한 모티프다.
노을은 수술 전날밤 병실에서 천연덕스럽게 퉁수를 불던 당숙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홍천 강가의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 노릇할 때 바라보던
겨울 그림과도 겹쳐진다.
가장 굵은 선과 선명한 빛깔을 가진 것은 1960년대 후반 홍은동 산비알에서
바라보던 노을이다.
전기도 없이 을씨년스런 겨울을 견디던 그 무렵, 시인 김관식의 집에 얹혀
살면서 아내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며 가난 걱정에서 잠시나마 헤어나던 일은
지금도 아련하다.
유난히 노을을 좋아한 김관식은 일부러 집을 서향으로 지었고 가끔은
천상병과 함께 들이닥쳐 노을을 배경으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시인의 산문 속에는 학병으로 끌려가는 젊은이들에게 천황폐하를 위해 죽어
돌아오라고 역전에서 만세를 부르던 유년시절, 자취방 옆 한약방집 딸과
봄밤의 사과꽃길을 걷던 추억, 세상에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요시찰 대상으로 쫓기던 유신 때의 비애도 녹아있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4일자 ).
신씨가 산문집을 내기는 처음이다.
"바람의 풍경"에는 그의 문학적 모티프와 삶의 뿌리가 오롯이 드러나 있다.
신경림 문학의 토대가 된 "길"과 "노을"의 이미지가 밀도있게 그려져 있다.
바람 많은 현대사의 언덕을 묵묵히 오르면서 그가 지나온 길과 세상의
풍경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자리.
그의 시에서도 자주 확인되지만 그는 스스로 "길"속에서 자랐다고 말한다.
미당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길"이었다.
이번 산문집은 "문득 고향생각이 나서 무작정 찾아갔다가 해를 등지고 옛
언덕길을 거꾸로 걸으며 잊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 연유로 탄생했다.
"길이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기도 한다는 평범한 사실에 생각이 미친 것도 그때였다. 이로부터 나는
일부러 안으로 났다고 여겨지는 길을 찾아 걸었다. 잊었던 마을과 마주치기도
했으며 사라졌다고 여겨지던 감정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의 길 이야기는 할머니의 틀국숫집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된다.
그 장터는 영남에서 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단골손님 중에는 소장수가 많았다.
삼촌에게 소들이 서울로 간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크면 소장수가 되겠다"고
했다가 야단도 맞았지만 그는 그때부터 길과 소장수와 바깥세상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책을 구하기 위해 새우젓장수를 따라 용당장까지 이십리를 걷던 일,
탄금대 나루에서 서울로 가는 뗏목을 보며 장시 "남한강"의 행간을 매만지던
것도 길과 맞닿은 풍경들이다.
"생각해보면 내게는 길만이 길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바깥 세상을 내다볼 수 있었고 또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그 길은 아름답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 그 길을 타고,
사람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첫장에 나오는 "노을"도 중요한 모티프다.
노을은 수술 전날밤 병실에서 천연덕스럽게 퉁수를 불던 당숙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홍천 강가의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 노릇할 때 바라보던
겨울 그림과도 겹쳐진다.
가장 굵은 선과 선명한 빛깔을 가진 것은 1960년대 후반 홍은동 산비알에서
바라보던 노을이다.
전기도 없이 을씨년스런 겨울을 견디던 그 무렵, 시인 김관식의 집에 얹혀
살면서 아내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며 가난 걱정에서 잠시나마 헤어나던 일은
지금도 아련하다.
유난히 노을을 좋아한 김관식은 일부러 집을 서향으로 지었고 가끔은
천상병과 함께 들이닥쳐 노을을 배경으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시인의 산문 속에는 학병으로 끌려가는 젊은이들에게 천황폐하를 위해 죽어
돌아오라고 역전에서 만세를 부르던 유년시절, 자취방 옆 한약방집 딸과
봄밤의 사과꽃길을 걷던 추억, 세상에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요시찰 대상으로 쫓기던 유신 때의 비애도 녹아있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