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 대구대 교수 / 경영학 >

계획이란 무엇인가.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에 달성할 목표를 세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을 구체화하는 것 아닌가.

계획은 진공 상태에서 수립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1백% 예측가능한 상황에서 작성하는 것도 아니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계획의 기본전제로서 당연히 미래에 대해 먼저
예측해야 한다.

따라서 계획수립 과정에는 많은 인원, 많은 시간, 그리고 많은 자원이 든다.

요즘처럼 기업환경이 급변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때는, 그리고 각종
경제지표상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정밀하게 수립한 계획이 아무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IMF 전후의 환율변화와 이자율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의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 등이 그것이다.

하도 급변하는 바람에 기업은 지금까지의 계획의 전제 또는 기본 가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보자.

최근 기업의 계획기능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계획이란 기업의 자원을 낭비하는 허깨비와 같은 것이라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여전히 계획이 기업의 발전을 가속시키는 강력한 무기라는
주장이다.

1990년 미국에서 약 3천개의 신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업계획에 많은 시간을 들인 기업들과 아무 계획없이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
사이에 첫 3년동안 살아남은 비율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자세하고 포괄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하는
기업들은 기회 포착이 느린 편이었다.

분석과 계획은 오히려 시장 진입을 지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문제점을 밝혀냄으로써 아이디어 자체를 아예 사장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상위 2백50개 기업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대상기업 가운데
11%만이 사전의 계획과 사후의 성과를 정기적으로 비교분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결과가 암시하는 것은 계획기능이 최고 경영자에게 중요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실제로 경영자들은 경영
계획을 별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캐나다 맥길대학의 헨리 민츠버그 교수는 그의 저서 "전략적
계획의 성쇠"에서 계획수립 활동의 문제점은 결과보다는 과정에만 매달리고,
예측이 부정확하며, 분석위주로 되어 직관과 창조력이 결핍된다는 점을
들었다.

정치학자 아아론 월다프스키(Aaron Wildavsky)는, 1973년 로버트 맥나마라
(Robert McNamara)가 미국 국방부장관 재직시절 공공부문에 도입했던 PPBS와
같은 치밀한 계획과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단정했다.

10여년 전, 잭 웰치 회장은 GE를 처음 맡자마자 극도로 형식화된 회사의
기획제도를 폐지하고 본사의 기획담당자 대부분을 다른 부서로 전보시켰다.

또한 각 사업계획을 요약하여 "1페이지 보고서"를 만들도록 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상사가 보고서를 읽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은
보고서를 두껍게 작성하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대부분의 기업이 작성하고 있는 월간 경영보고서의 맨 첫
페이지에 "취약부문과 문제점" 그리고 "특별히 성공한 부문"을 간단히
요약 보고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러나 1960년대 계획수립의 효용성을 주창하면서 치밀한 계획수립의 틀을
만들어냈던 러셀 애코프 (Russell Ackoff) 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애코프는 계획수립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많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반응을 이용해 경영자들은 좀더 치밀한 계획수립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계획은 효과적인 경영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계획이
없는 조직은 그때 그때 임기응변적인 대응을 한다.

근시안적인 경영을 하게 되므로 방향타가 없는 배와 같다고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경영자들이 아예 계획이 없이 그때 그때 자신의 판단
또는 경영감각에 따라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정밀한 계획은 시간낭비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비전은 구성원과 주변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연성 없는 비전, 즉 "실행계획의 과잉"은 오히려 경영혁신 노력을
실패로 이끌 수도 있다.

< jklee@biho.taeg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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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경영학과
<>경북대 경영학 박사
<>저서:빅뱅 경영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