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을 뛴다] 21뉴리더 (18) 장영주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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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음악계를 이끌 연주자로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20)를 꼽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국내 음악잡지들이 새해 첫호에 그를 표지모델로 내세우고 특집기사를
쓰느라 경쟁을 벌인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세계 음악계도 신동에서 거장으로 성숙해가는 그의 연주에 잠시도 귀를
떼지 않고 있다.
장영주는 세계 음악계에서 신기록을 가장 많이 가진 연주자로 통한다.
4살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5살에 첫 연주회 가졌다.
9살인 1989년에는 세계 최연소로 클래식음반을 녹음했다.
이듬해인 1990년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해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1993년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금세기 10대 천재"에 아인슈타인과 함께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미국의 최고 음악상인 에이버리 피셔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는
감격을 누렸다.
여성 연주자로서도 최초의 일이었다.
그는 그러나 천재라 불리는 게 뭔가 시험받는 것 같아 싫다고 말한다.
"몇년 전에야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래, 내가 천재일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자신감이 솟고 여유도 생기더라구요"
음악계에도 "신동"이나 "천재"로 불리던 이들이 어느 순간인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음악을 완성해가는 과정에는 천재적인 기교와 영감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 끊임없이 자신을 회의하고 채찍질하는 노력,
음악에 대한 겸허한 자세 등을 갖춰야 관객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영주는 현재까지 합격점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길러낸 줄리어드음악원의 도로시 딜레이 교수는
"영주의 연주는 벌써 완성된 연주자 수준에 올랐다"며 "음악앞에서 비범한
명석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격찬했다.
발랄하고 씩씩한 성품과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사춘기에 겪을 수 있는
감성적 혼란을 잘 극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협주곡 녹음을 위해 6개월 동안 독일 뮌헨에
머물면서 슈트라우스의 작곡세계를 연구했다"고 말한다.
세계음악계는 그의 진지함과 성숙함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바렌보임, 쿠르트 마주어, 볼프강 자발리쉬, 사이먼 래틀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그를 협연자로 초청하려고 안달하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장영주는 지난해 하버드대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올해 줄리어드음악원 2학년이 되지만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두 학교를 동시에 다니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연주일정이 너무나 빡빡해 아쉽게도 입학을 1년 연기했다.
< 장규호 기자 seinit@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5일자 ).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국내 음악잡지들이 새해 첫호에 그를 표지모델로 내세우고 특집기사를
쓰느라 경쟁을 벌인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세계 음악계도 신동에서 거장으로 성숙해가는 그의 연주에 잠시도 귀를
떼지 않고 있다.
장영주는 세계 음악계에서 신기록을 가장 많이 가진 연주자로 통한다.
4살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5살에 첫 연주회 가졌다.
9살인 1989년에는 세계 최연소로 클래식음반을 녹음했다.
이듬해인 1990년 주빈 메타가 이끄는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해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1993년 뉴스위크지가 선정한 "금세기 10대 천재"에 아인슈타인과 함께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미국의 최고 음악상인 에이버리 피셔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는
감격을 누렸다.
여성 연주자로서도 최초의 일이었다.
그는 그러나 천재라 불리는 게 뭔가 시험받는 것 같아 싫다고 말한다.
"몇년 전에야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래, 내가 천재일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자신감이 솟고 여유도 생기더라구요"
음악계에도 "신동"이나 "천재"로 불리던 이들이 어느 순간인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음악을 완성해가는 과정에는 천재적인 기교와 영감외에도 필요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 끊임없이 자신을 회의하고 채찍질하는 노력,
음악에 대한 겸허한 자세 등을 갖춰야 관객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영주는 현재까지 합격점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길러낸 줄리어드음악원의 도로시 딜레이 교수는
"영주의 연주는 벌써 완성된 연주자 수준에 올랐다"며 "음악앞에서 비범한
명석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격찬했다.
발랄하고 씩씩한 성품과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사춘기에 겪을 수 있는
감성적 혼란을 잘 극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협주곡 녹음을 위해 6개월 동안 독일 뮌헨에
머물면서 슈트라우스의 작곡세계를 연구했다"고 말한다.
세계음악계는 그의 진지함과 성숙함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바렌보임, 쿠르트 마주어, 볼프강 자발리쉬, 사이먼 래틀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그를 협연자로 초청하려고 안달하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장영주는 지난해 하버드대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올해 줄리어드음악원 2학년이 되지만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두 학교를 동시에 다니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연주일정이 너무나 빡빡해 아쉽게도 입학을 1년 연기했다.
< 장규호 기자 seinit@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