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을 이고 있는 킬리만자로 밑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얼룩말들.

대자연속에서 야생동물이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모습을 담은 마루베니상사의
달력은 퍽 인상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인쇄술에 감탄하며 한마디씩 한다.

"역시 일본 달력은 달라"

하지만 이 달력은 한국에서 찍은 것이다.

서울 성수공단에 있는 삼성문화인쇄.

이 회사는 마루베니 닛쇼이와이와 같은 일본 종합상사의 달력을 10년 넘게
인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인쇄기술은 국내 최고로 꼽힌다.

역대 대통령 사진도 이곳에서 인쇄됐다.

조영승(66) 사장은 30년 이상 회사를 경영하면서 단 한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에쿠스나 체어맨 같은 근사한 자가용을 탈 만도 하다.

하지만 자가용이 없다.

공장 빈터를 가득 메운 차들은 모두 종업원들 것이다.

심지어 엊그제 들어온 견습사원조차 자가용을 몰고 오지만 그는 전철을 갈아
타고 출근한다.

서울 방배동에 있는 과학기기업체 이디의 박용진(63) 사장도 마찬가지.

무선통신기기용 실험실습장비 오실로스코프 등 첨단 과학기기를 만드는
이 회사는 코스닥 등록기업이다.

지난해에는 2백40억원 매출에 15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렸다.

박사장은 이제까지 한번도 자가용을 가져본 적이 없다.

호주머니에는 항상 1만원권 전철표가 들어 있다.

조사장과 박사장은 공통점이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쟁쟁한 중소기업의 사장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외환위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이 흥청망청해서는 안 된다며 걱정해
왔다는 점도 닮았다.

더욱 흡사한 것은 종업원을 위해 베푸는 모습이다.

그들 스스로는 철저하게 내핍생활을 하지만 종업원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쓴다.

조사장의 연봉은 2천40만원.

보너스 없이 월급만 1백70만원이다.

견습사원을 포함한 60여명의 종업원중 중간 이하다.

번돈을 첨단시설 도입과 종업원을 위해 쏟아붓다보니 개인재산도 거의 없다.

박사장도 비슷하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중 절반이상을 임직원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주식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수천만원에서 10억원대까지 번 사람도 있다.

박사장은 종업원을 위해 더 큰 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중소기업 사장중에는 이같이 베푸는 경영을 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이
있다.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 이흥세 동아전기프러그 사장, 김진영 위드컴 사장
등.

정 사장은 창업공신들에게 자신의 지분을 무상으로 나눠줬다.

그들은 대부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대의 부자가 됐다.

이 사장 역시 고생한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 줄 준비를 하고 있다.

김 사장은 과감한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과실을 공유하는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나직하다.

하지만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 힘이 실려있다.

"돌격 앞으로"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는 리더의 본질을 몸으로 실천하기
때문인 듯하다.

< 김낙훈 기자 nh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