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벤처] 모범기업/CEO : (CEO 경영철학) '이건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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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우엔지니어링 ''이건환 CEO''
이건환 CEO의 경영이념은 "신용과 신의"에 바탕하고 있다.
좋은 제품 못지 않게 좋은 사람을 만들어야한다는 "인성론"이 그의
경영철학.
그는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않는 벤처인이다.
이같은 의지와 철학은 그의 삶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
그는 극빈과 역경을 도전정신으로 이겨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 CEO는 초등학교 때부터 기성회비를 제때 못낼 정도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질병을 앓던 남동생과 누나를 잇따라 잃는 아픔을 겪었다.
불굴의 노력으로 경복고에 들어간 이후에는 병상의 부친을 간병하느라
공부할 틈이 별로 없었다.
이런 역경에서도 고려대 경영대를 나와 LG정보통신에 입사했다.
이때 역경을 극복한 것은 대기업의 안정된 직장생활을 뿌리치고 창업이라는
고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창업초기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전셋집은 물론 결혼반지 돌반지까지도
팔아가며 일을 추진했던 그다.
이 사장의 인성론은 독서경영으로 이어졌다.
그는 틈틈이 서점에 들러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구입해 읽고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사업과 직접 연관이 없는 건축과 미술분야에도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추고 있다.
특히 유화에는 상당한 조예가 있다.
현재의 용인사옥 및 서울사옥내 디자인 중 중요한 부분을 직접 구상했을
정도다.
그는 사원들에게 연간 최소 1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한다.
그는 "기본을 갖춘 사람"을 인재 개발의 기본요소로 삼고 있다.
능력은 있지만 기본이 안된 사람보다는 능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기본이
돼 있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경영에도 배어있다.
창조성, 즉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심을 갖게 한 근원적 요소가 됐다.
다량의 정보를 단기간 내에 종합적으로 분석 소화해 내는 정보분석력을
갖춘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신의도 남다르다.
창업 초기의 일.
연우교역이 잡화류를 취급할 때다.
사업자금은 물론 해외출장비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던 당시 회사 역사를
바꾸어 놓는 사건이 있었다.
대기업 근무시절 업무관계로 알고 지냈던 일본 히타치사의 영업부장으로부터
그 대기업에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대기업에서 시험한 결과 히타치 제품이 경쟁 관계에 있던 미국 회사
제품보다 품질 성능에서 뒤지지 않았다.
결국 이건환 CEO의 도움으로 히타치는 납품을 할 수 있었다.
히타치측에서는 그에게 수고의 답례로 거액의 커미션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것이 히타치 내부에서 화제가 됐다.
얼마 뒤 그는 히타치 사장으로부터 파트너 제의를 받았다.
히타치 영업부장의 인품을 믿고 도와준 것이기에 커미션은 받을 수 없다는
그의 신념에 탄복해 히타치측에서 파격적인 선물을 준 것이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정직 신뢰 원칙에 충실한 경영자의 소신으로 인해 난관을
극복한 셈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이제 "원론적 경영" "소프트 경영" "스피드 경영"
"문화경영"의 4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
이건환 CEO의 경영이념은 "신용과 신의"에 바탕하고 있다.
좋은 제품 못지 않게 좋은 사람을 만들어야한다는 "인성론"이 그의
경영철학.
그는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않는 벤처인이다.
이같은 의지와 철학은 그의 삶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
그는 극빈과 역경을 도전정신으로 이겨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 CEO는 초등학교 때부터 기성회비를 제때 못낼 정도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질병을 앓던 남동생과 누나를 잇따라 잃는 아픔을 겪었다.
불굴의 노력으로 경복고에 들어간 이후에는 병상의 부친을 간병하느라
공부할 틈이 별로 없었다.
이런 역경에서도 고려대 경영대를 나와 LG정보통신에 입사했다.
이때 역경을 극복한 것은 대기업의 안정된 직장생활을 뿌리치고 창업이라는
고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창업초기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전셋집은 물론 결혼반지 돌반지까지도
팔아가며 일을 추진했던 그다.
이 사장의 인성론은 독서경영으로 이어졌다.
그는 틈틈이 서점에 들러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구입해 읽고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사업과 직접 연관이 없는 건축과 미술분야에도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추고 있다.
특히 유화에는 상당한 조예가 있다.
현재의 용인사옥 및 서울사옥내 디자인 중 중요한 부분을 직접 구상했을
정도다.
그는 사원들에게 연간 최소 1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한다.
그는 "기본을 갖춘 사람"을 인재 개발의 기본요소로 삼고 있다.
능력은 있지만 기본이 안된 사람보다는 능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기본이
돼 있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한다.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경영에도 배어있다.
창조성, 즉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심을 갖게 한 근원적 요소가 됐다.
다량의 정보를 단기간 내에 종합적으로 분석 소화해 내는 정보분석력을
갖춘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신의도 남다르다.
창업 초기의 일.
연우교역이 잡화류를 취급할 때다.
사업자금은 물론 해외출장비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던 당시 회사 역사를
바꾸어 놓는 사건이 있었다.
대기업 근무시절 업무관계로 알고 지냈던 일본 히타치사의 영업부장으로부터
그 대기업에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대기업에서 시험한 결과 히타치 제품이 경쟁 관계에 있던 미국 회사
제품보다 품질 성능에서 뒤지지 않았다.
결국 이건환 CEO의 도움으로 히타치는 납품을 할 수 있었다.
히타치측에서는 그에게 수고의 답례로 거액의 커미션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것이 히타치 내부에서 화제가 됐다.
얼마 뒤 그는 히타치 사장으로부터 파트너 제의를 받았다.
히타치 영업부장의 인품을 믿고 도와준 것이기에 커미션은 받을 수 없다는
그의 신념에 탄복해 히타치측에서 파격적인 선물을 준 것이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정직 신뢰 원칙에 충실한 경영자의 소신으로 인해 난관을
극복한 셈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이제 "원론적 경영" "소프트 경영" "스피드 경영"
"문화경영"의 4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