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 문화평론가 / 평택대 교수 >

어느 날 청년이 된 사내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포르노였다"

O양 비디오와 서갑숙의 책, 그리고 영화 "거짓말"로 이어지는, 성에 점령
당한 "식민도시"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상품생리는 "좋은 헌것보다 나쁜 새것"에 대한 욕망을 매일 같이 심어준다.

상품은 팔려야 하며 컴퓨터와 핸드폰은 새것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어쩌면 이제까지 "말해질 수 없던 어떤 것"에 대한 새로운
시도라는 것에 편승한 "나쁜 새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새것은 무죄라는 논리다.

이 영화는 판금작가 장정일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우리 내부
어두운 구석에 화석처럼 낙인찍힌 성에 대한 상처나 욕망의 의미들을 풀어
내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의 "작란"(김수영의 시에서)의 미숙함을 보여준다.

장선우의 모험적 시도는 다만 저항이라는 흉내에 그치고 있어 영화적 내면의
진정성에 기여하지 못한다.

삶은 농담이며 어쩌면 가장 진실한 성은 천국의 언어인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의 황량함만큼 성은 권태의 연장이다.

성은 장선우의 말대로 하나의 유희이며 지루함의 연속인 것이다.

30대 후반의 사내는 스무살 연하인 여자와의 관계속에서 환각과 같은 성에
중독된다.

그러나 그 모든 불온한 성행위는 사내가 다시 현실로 복귀하기 위해 거짓말
이라는 허구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내는 아내에게 돌아와 이제 현실속에서 거짓말의
삶을 살아간다.

성행위가 거짓일까, 아니면 아내와의 삶이 거짓일까.

진실은 기실 불편한 것이다.

관객들이 홈비디오 속에 있는 관능을 위해 "거짓말"을 보러간다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보기 위해 "박하사탕"을 보러간다.

이를테면 우리 마음 속에 눌러놓은 과거의 진실이다.

광주라는 역사의 망령이나 고문치사의 피흔적, 그리고 IMF의 실직과 이혼
이라는 현실적 우울이 영상 가득 처절하다.

"억압된 것들의 귀환", 기억의 복수가 시작된다.

고문형사였고 여비서와 바람 피는 가구점 사장 영호는 20년 전엔 순진했던
공단의 20대 청년이었다.

이것은 시간이 가져다 준 폭력, 즉 시간은 우리를 닳고 닳게 만들어 준다는
것, 결코 거슬러 돌아갈 수 없다는 불가역의 법칙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시간을 거꾸로 추체험해가는 방식 속에서 이창동은 순수의 그 지대로 역류해
올라가고자 한 것일까.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순진하던 영호가 순임과 함께 박하사탕을
나누며 소풍 온 그 철로 옆 강변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영호가 꿈에선가 본 듯한 장소의 낯익음, 분명 처음 온 그 야유회의 장소는
영화 처음의 장소이며 영호의 절규와 죽음을 낳는 장소이다.

영화는 다시 영화의 시작으로 순환한다.

영화의 끝에서 관객들은 기억의 영사막을 되돌려 우리의 주인공 영호의
닳아가는 허무의 시간 속으로 회귀해 간다.

그러면 신 세기의 벽두를 장식하는 이 두 영화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신세기의 희망이라는 말 대신 극단적 허무, 이창동의 말대로 "공격적 허무"
에 우리는 저격당한 듯하다.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바람 속에서 빅딜과 빅브러더스의 출현이라는 신제국
주의의 20대80의 재편성 과정에 놓여 있다.

두 영화는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남성의 "비틀거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베트남 파병, 중동 근로자, 광주의 살육, 고문 치사,
퇴출과 이혼, 그 가해와 피해의 현장에 한국남성들은 있었다.

그들은 두 영화에서처럼 가해자라는 점에서 피해자다.

그들은 아침, 구부러진 못 같이 시든 남성을 내려다보거나 권력의 중독에
빠진 자들의 세상인 신문을 우울하게 내려다본다.

근대 폭력의 역사와 가부장제는 한국의 남성들을 차츰차츰 거세해 왔다.

"박하사탕"의 영호가 꾼 꿈은 좋은 꿈이 아니라 사실상 악몽이다.

근대화와 민주화의 과정은 치유받을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의
협곡을 만들어냈다.

한국남성은 거짓말이라는 "환각"과 지독한 현실이라는 "환멸"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성적 일탈이나 권태, 그리고 뒤틀린 삶의 고리에서 벗어나 가능성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시간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것.

흩어진 박하사탕을 다시 모을 수는 없는 것.

그렇다면 허무를 딛고 다시 일어서, 허무의 극단에서 거세된 꿈의 흔적을
주워 꿰맞춰 보아야 할 것이다.

두 편의 영화는 성의 환각과 권력의 횡포 속에 빠진 중년 사내의 허무에서
다시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들여다보게 한다.

< yhkim@ptuniv.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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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이화여대 국문학박사
<>저서:한국현대시의 어법과 이미지, 기호는 힘이 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