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새의 울음도 끊겼다
발목까지 차는 눈도 오지 않는다
휘파람 같은 나들이의 목숨
맑은 바람 앞에서
잎잎이 피가 돌아
피가 돌아
눈이 부시다
살아 있는 것만이
눈이 부시다

이근배(1940~) 시집 "노래여 노래여"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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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매섭게 차고 맑은 날이 떠오른다.

눈도 오지 않고 들새의 울음도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오로지 맑고 찬
바람뿐인 날을 생각해 보자.

이육사는 "절정"에서 겨울을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조금은 엉뚱한 비유를
했지만 칼을 대면 찢어질 것 같은 겨울날 앞에서 오직 살아 있는 것만이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 어찌 이상하겠는가.

삶에 대한 외경이 결코 무겁지 않게 다뤄진 점도 이 시의 덕목이다.

신경림 시인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