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연두교서는 " State of the Union" 을 의역한 것이다.

직역을 하자면 "국가현황보고" 쯤으로 해설할 수 있을 지 모른다.

1790년 1월 8일 뉴욕시 연방홀에서 조지 워싱턴 초대대통령이 최초로
발표한 이래, 매년 1월말쯤 발표된다는 점을 강조한 나머지 아시아권에서는
영어에 없는 연두라는 단어가 편의상 붙여졌을 뿐이다.

지난 27일의 연두교서는 미국의 정책 우선 순위가 사회보장제도보완,
환자권리장전 제정, 교육환경개선, 세금감면과 국가채무 완전변제 가능성,
환경문제 등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밖에 최저임금, 국가안보, 외교문제는 물론 총기구입을 위해서는
자동차면허증과 비슷한 허가절차를 거치게 하자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제안까지 망라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두교서는 뉴욕타임즈가 다음날 신문 1면 머리에 "클린턴이
미국의 번영을 자기 공으로 과장했다"는 제목을 단 것이 말해주듯 아전인수식
자화자찬으로 점철된 연설이었다.

같은날 워싱턴 포스트 사설 또한 "연두교서는 더 이상 국가현황보고서가
아니다. 연두교서는 이제 대통령이 자기의 업적이나 목표 그리고 계획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 선거가 끼어 있는 해의 연두교서 특히 클린턴의
이번 연두교서는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부통령(앨 고어를 지칭함)에게 그간의
업적성과표를 그대로 이어 넘겨주려는 정치적 선전장이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의원들이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원과 행정부관리
들이 89분동안의 연설 중 무려 128회의 박수를 쳐댄 이번 연두교서에서
클린턴은 앨 고어에 대한 지원사격뿐 아니라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하고
있는 부인 힐러리를 추켜세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과거 두 번에 걸친 연두교서와 이번의 연두교서는 많은 대비가 되는
연설이었다.

98년 연두교서는 르윈스키사건이 터진 직후 이를 전면 부인한 후 행한
연설이었고 99년에는 르윈스키 사건에 대한 위증으로 의회의 탄핵재판의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의 연설이었다.

이번 연두교서는 클린턴이 그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무언가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클린턴은 국가를 먼저 내세우는 지도자였다기 보다는
선거와 당 그리고 부인 힐러리의 그림자를 떨쳐버리지 못한 정치인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곳의 평가다.

< 워싱턴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